나의 이야기

인문학 논란을 보고

팔락 2015. 3. 3. 10:56

인문학 논란을 보고

김인규 한림대 교수는 동아일보 칼럼(2월 28일자 26면)에서 인문학을 용잡이 학원에 비유하며 인문계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의 인문 교양 교육을 늘리자고 주장했다

이 글에 대해 김희원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은 여러 항목을 짚으며, 방황하는 청년과 중장년층이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수적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 두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유는 다르지만 이공계 교육이 주가 되고 인문학이 보조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우리의 학습 체계는 이공계와 인문학 지식이 습득되는 방식이 뇌에서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기초는 인간이 600만 년 전 침팬지에서 분리되어 오랜 시간 동안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채택되고 보존되어온 사회적 관계의 본능과 관련되어, 주로 직관의 형태로 지식이 쌓이기 때문에 교육의 효과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즉 가르쳐도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고 가르쳐서 배우기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포착한 영화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고등학교 교사(우리나라의 국어 교사 역)인 로빈 윌리암스는 시를 해석하기 위한 지침서를 교과서에서 찢어버리라고 한다. 시를 느끼는 것은 개개인의 개성에 따는 감성이지 어떤 고정된 틀에 있는 것이 아니라며.

 

그러나 수학을 포함한 과학적 지식은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본성에 쌓인 지식이 아니라 수많은 천재적인 인간들의 이성에 의해 발견되고 고안된 지식이 쌓인 것이다. 즉, 우리의 본성에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므로 배우기가 어렵고 힘든 것이다. 또한 이것은 개개인의 직관에 따라 지식의 체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의 무의식에 어울리는 학문이 아니라서 배우기가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는 진화과정에서 수학이나 과학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질병을 피하고, 짝을 구하고, 자식을 돌보기 위해 적응해왔다. 따라서 말을 배우고, 공감을 하고, 놀이를 하고, 협동을 하는 것은 쉽고 자연스럽게 배워지므로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 없지만, 글을 읽고 쓰는 것, 수학과 과학은 배워야 한다. 즉, 진화과정을 통해 본성에 와 닿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분야는 어릴 때 많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고 자라면서 저절로 익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화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분야는 교육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구석기 시대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현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에서 중요한 것들 중 수학이나 과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지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이것이 이공계 교육이 주가 되고 인문학 교육이 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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