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리에 대해

팔락 2013. 12. 21. 12:49

영리에 대해

사회가 존재하는 데 있어서 자애는 정의만큼 중요하지 않다. 자애가 없어도 사회는, 비록 최선의 상태는 아니겠지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불의가 만연하면 사회는 끝내 무너지고 만다. 자애는 건물의 기초가 아니라 장식이며, 권하는 것으로 족할 뿐 강제할 필요까지는 없다.

 

반면에 정의는 건물전체를 지탱하는 주 기둥이다. 이것이 사라지면 인간사회라는 거대한 구조물은 한 순간에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연민(憐憫)과 동정심(同情心)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종류의 감정이다.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보고 흔히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를 들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 도덕 감정론 (제 1부, 제1편, 제1장에서)

 

인간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동업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타인의 박애심에만 의존해서 이를 기대하는 것은 헛되다. 잘될 가능성이 훨씬 큰 방법은 따로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기심 때문에 그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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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 제조업자들의 박애심 덕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이기심) 덕분이다.”

-- 국부론

 

의원이 환자의 상처를 빨아 그 고름을 입에 담는 것은 환자에게 혈육의 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보고 하는 것이다. 수레 제조자는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장의사는 많은 사람이 죽기를 바란다.

 

곳간이 풍족해야 예와 도가 살아난다.

 

삼류는 자신의 능력을 쓰고 이류는 타인의 힘을 활용하고, 일류는 타인의 능력을 이끌어낸다.

-- 한비자

 

칸트의 ‘비사회성의 사회성’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는 비사회적인 성격, 권력, 명예,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으로 타인을 싫어하면서도 그들을 떠날 수 없고 사회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인간에게 사회적 배타성, 시기와 경쟁을 불러오는 허영심, 부와 권력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부여한 자연에게 냉정한 경탄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위의 모든 말들이 결국 자본주의의 원리를 밝히는 것들입니다. 즉, 자연이 부과한 인간의 자연스런 이기심을 승화시켜 사회, 문화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및 자본주의 제도 속에서 우리 의사들이 국민과 함께 더불어 행복을 누리기 위해 물욕을 버린 성인이 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공자도 소인은 기이한 것에 놀라지만 군자는 평범한 것에 놀란다고 했습니다.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이 성인이 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했습니다. 의사들도 평범한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도덕성 위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면 됩니다.

 

영리의 국어적인 뜻은 재산상의 이득의 꾀하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모든 인간은 영리를 취해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리고 영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과정 속에서 가치평가의 기능도 합니다.

 

매우 이타적인 의사가 있어서 영리를 초월하여 의술을 펼치려고 해도 영리를 얻지 못하면 병원이 망하고 자신의 뜻도 펼치지 못합니다.

 

국가가 병원을 경영해도 영업이익을 얻지 못하면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그 적자를 때워야 합니다.

 

영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개인에게는 인센티브로 작용합니다. 즉, 보다 성실하게 일하려는 동기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공공병원의 경우에는 영업이익이 효율적인 경영을 하였는지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낭비의 요인을 얼마나 줄였는지, 인력을 얼마나 적재적소에 배치했는지, 환자에 대한 친절 정도는 어떠한지 등이 많은 요소를 일일이 평가할 수가 없으므로 그 최종 결과인 영업이익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공공병원의 특성상 일부 환경에서는 적자를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영업이익을 추구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적자를 최소화하여 국민의 세금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요.

 

공공병원과 개인병원의 경쟁에서 개인병원이 우월한 것을 인센티브의 영향으로 설명합니다. 환자의 건강 증진과 질병치료라는 목표를 누가 더 잘 이루느냐가 문제지, 누가 병원을 설립하느냐의 주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영리가 목적으로 작용하든 가치평가의 기능을 하든 추구할 가치가 있고, 추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도덕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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