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논쟁에서 이기는 법

팔락 2015. 2. 26. 23:36

인지와 감정을 독립적인 과정으로 나누는 이분법은 잘못이다. 인지란 정보처리를 가리키는 말이고 이러한 인지에는 하위 인지(시각적 인지와 기억 환기)는 물론 상위 인지(의식적인 추론)도 포함되어 있다.

 

감정은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나는데, 그중에서도 첫 단계가 방금 일어난 일이 내 목표에 도움이 되는지 방해가 되는지 여부로 그 일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평가는 일종의 정보처리, 즉 인지 작용에 해당한다.  즉, 감정도 일종의 정보처리 과정이다. 따라서 감정과 인지를 반대개념으로 놓은 것은 비와 날씨, 그리고 자동차와 운송 수단을 반대개념으로 놓은 것만큼이나 의미없는 일이다.

 

모든 형태의 판단이 그렇듯 도덕적 판단 역시 인지 과정의 하나라는 것이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정작 중요한 구분은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인지 과정 사이에서 해야 하는 것인데 바로 직관과 추론이다. 도덕적 직관의 유형 중 하나에 도덕적 감정이 들어가긴 하지만, 도덕적 직관은 대체로 좀 더 미묘한 구석이 있어 감정 수준으로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별 노력 없이 내리는 도덕적 판단은 매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에 이르는데,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 바로 직관이다. 직관은 인지의 한 종류로 추론의 한 종류가 아닐 뿐이다. 즉, 인간은 일반적으로 도덕적 판단에서 사회적 직관주의자들이다.

 

이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을 보면 우리가 도덕적-정치적 논쟁을 할 때 왜 분통 터지도록 답답해하는지가 설명된다. 도덕적 이유가 다름아니라 직관이라는 개가 흔드는 꼬리이기 때문이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건 의사소통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개의 꼬리를 붙잡아 억지로 흔든다면 개가 행복할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람들의 논변을 완전히 논박하는 것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 흄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래전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논쟁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 어느 쪽도 추론을 통해 자신의 신조를 끌어내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情)에 호소하지 않는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이 더 올바른 원칙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사람들 안의 코끼리(감정, 이성은 기수에 비유됨)에게 말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직관을 끌어내려고 해야지, 새로운 근거를 끌어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고금을 막론하고 코끼리에게 말 걸기 명수인 데일 카네기는 상대와의 직접적 대립은 가급적 피하라고 강조한다. 그 대신 호의적으로 서두를 열고,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하며,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당신'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누구를 설득하려는 사람은 자기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 대화에서 자신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고, 따뜻하고 열린 마음을 갖고 있음을 먼저 전해야 한다.

 

카네기는 헨리 포드의 말을 빌려 이렇게 표현했다. "만일 성공의 비결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줄 아는 데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눈은 물론 다른 사람의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데에 있다."

 

공감이야말로 서로가 바르다는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이다. 물론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관을 허물고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 바른 마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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