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학

‘보편적 의료복지에 관한 구상’에 대한 반론

팔락 2012. 7. 24. 11:39

김용익 의원의 ‘보편적 의료복지에 관한 구상’에 대한 반론

청년의사에 실린 선생님의 "보편적 의료복지에 관한 구상"강연 초록을 보았습니다. 이제 19대 국회의원으로서 많은 활약을 하시겠지요. 그러나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여전히 "정치 및 국가 만능주의", "의료에서 정작 의료를 공급하는 의사들의 역할이나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경시", 그리고 한국적인 고유한 의료문화에 대한 이해의 한계가 엿보여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이 해 오신 수많은 학문적, 또 정책적인 노력들에 경의를 표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선생님의 개인적인 한계라기보다는 선생님 세대가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즉 독재 정권과 투쟁하면서 생긴 지나친 정치편향 및 정권을 쥐면 나라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천주의, 의사들을 파트너가 아닌 기득권 보수 세력으로 보고, 이들을 공적 목적에 복무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사고, 그리고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이 영국이나 유럽, 또는 미국과는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치밀하게 공구하는 주체적인 학문자세의 부족(내지는 서구 모델의 추종)이 선생님 세대의 진보적 인사들에게서 종종 엿보입니다.

 

 

올 2월 24일의 이 강연에서 선생님은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을 문제로 드셨습니다. 60%대에 머물고 있는 보장성을 당장 90%대로 올리고,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급여/비급여의 구분을 신속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일단은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의료의 속성상 계속 새로운 기술과 치료법이 등장하고 있는 지금, 급여와 비급여를 신속하고 날카롭게 구분하기가 정말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근거중심의학을 한다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를 만들었지만, 실제 EBM이 가장 잘 뿌리내렸다는 영국에서도 모든 의료 실천이 다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료는 오히려 무한한 변수를 가지고 나타나는 환자에 대해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다해 대처하려는 의사의 상상력이 만나는 실천입니다. 급여/비급여의 강제 구분은 이러한 대처를 모두 똑같이 만들어버리려는 것으로 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창의성을 말살시킵니다.

 

물론 과잉진료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진료로 영리를 창출하려는 극히 일부의 의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의사들의 자율 규제와 교육을 통해 통제해야 하는 것이지, 국가가 관료적으로 특정한 기준을 강제로 부과해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북한에서 화가들에게 특정 장면을 그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환자 또한 그것이 의미 있는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한번 꼭 받아보았으면 기대하는 치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게이트키퍼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의사의 전문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들 중에 특히 중한 질병에 걸리면 온갖 정보들을 다 찾아다니고 누구로부터 들은 솔깃한 소리에 의사가 필요 없다 해도 그런 시술이나 치료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의사들이 이럴 때 그건 의미 없는 치료라고 잘 설득을 해야 하는데, 원가의 70%밖에 안 되는 의료수가에서는 당장 생존의 절박함 때문에 의미 없는 치료라도 돈이 된다면 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양심적인 의사는 몰락하고, 오히려 이런 일을 잘 하는 의사들이 더 잘 살게 되는 기형적인 현실이 되었는데 정부는 적반하장으로 임의로 정한 급여/비급여 기준을 가지고 의사들을 부도덕한 집단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환경에서 의사는 도저히 의료자원을 절약하는 윤리적인 게이트키퍼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작 문제는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이 아니라, 원가에 못 미치는 보험수가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건강보험 보장성이 중요한 이유로 비싼 의료비는 가계 파탄의 3대 원인이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 병원 진료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이 되는가요? 암과 같은 중질환의 경우는 이미 건강보험이 진료비의 90%이상을 보장하고 있음을 아실 겁니다. 문제는 비급여 영역(이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간병비, 그리고 병을 앓게 되어서 발생하는 실직으로 인한 수입 감소, 또한 중질환인 경우에는 정규 의료 외에 각종 민간요법 및 별별 종류의 이상한 치료를 쫒아 다니는(종교 행사 쫒아 다니는 것 포함)비용이 더 문제입니다.

 

집안에 치료가 불가능한 중환자가 발생하면 보통 가계가 파탄이 날 때까지 모든 수단(의료뿐 아닙니다)을 다 써 보게 되고, 그 가정에서 가계가 빈곤으로 추락하며, 차라리 환자가 빨리 사망하면 나을텐데 현대 의료로는 질병을 가지고 계속 유지하는 연명 기간만을 늘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동안 모든 가계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 의료가 모든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목숨을 연장시켜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 이럴 때 가계는 빈곤으로의 추락이 더욱 쉬워집니다.

 

간병비는 실제 간호사들이 간호를 하기 보다는 보호자에 대한 간호교육에 주력하는 우리 문화에서, 또 간호를 하려 해도 현재 건강보험 수가로는 간호 인력이 태부족이라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한 데서 생긴 우리나라의 특이한 현상입니다. 삼성병원 등이 보호자 없는 병원 캐치프레이즈를 걸었지만 애초에 우리나라 질병 문화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제 환자 치료에서는 급여가 되는 의료비보다 간병비와 병실비(6인실보다는 모두 1,2인실을 선호하지요)가 더 큰 부담입니다. 선생님이 언급하신 민간의료보험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드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보험 계약은 주로 보험업에 종사하는 지인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부조의 성격이 더 큽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보장성을 올린다 해도, 간병비와 상급 병실비까지 보장해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은 사람들이 계속 들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이런 의료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 주기란 불가능합니다.

 

 

선생님은 또 현행 의료체계가 고령화 시대에 부적합하고, 많은 환자들이 성인병 관리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의료체계가 "예방"을 중시하면 전체 의료비가 줄어들까요? 오히려 건강검진을 통해 사전에 "질병"이 아닌 질병의 가능성이나 조짐, 혹은 전암성 병변 등이 발견되면 이들의 의료 소비는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현대 질환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고령입니다.

 

건강검진과 예방으로 국민들을 더욱 더 오래 살게 만든다고 하면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 치매, 암의 위험에서 피해 갈 방법은 없습니다. 오래 살면 살수록 의료비는 더 쓰게 된다는 역설이 벌어지고, 이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건강보험료는 취업을 한 젊은이들이 내고, 그 혜택은 이미 은퇴한 고령층이 보는 것입니다.

 

무상의료의 구호들은 지금 "돈 보다는 사람"입니다. 이삼십년 뒤에는 "노인 보다는 젊은이!"가 될 지도 모릅니다. 이미 살만큼 사신 분들의, 그것도 부동산을 소유하고 젊은이들로부터 월세를 받아 살고 있는 분들의 임플란트, 인공장기, 인공관절, 치매약물 치료를 위해 가난한 젊은이들의 임금에서 10~20%를 떼어내어야 한다면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럴 때 "사회적 연대"의 개념이 먹힐 수 있을까요?

 

질병은 개인에게 닥치는 "불운"이므로 사회가 연대해서 풀어야 한다는 무상의료, 의료복지의 개념은 의료가 약 몇 가지와 청진기 정도로 가능했던 1950년대의 산물입니다. 그때는 그 정도의 사회적 비용으로 의료가 충분했고, 노인들은 뇌졸중, 암, 신부전에 걸리면 방법이 없어 그냥 사망했습니다. 그러니 의료혜택은 완치, 재활이 가능한 젊은 층을 겨냥했지요. 당시 대표적인 병들은 폐렴, 결핵, 성병, 전염병 등으로 쉽게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병들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술적 발전으로 돈이 있는 한, 기능을 하든 못하든, 의식이 있든 없든 생명은 부지시켜줄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우리는 전혀 새로운 의료의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한국 병원의 현실에서 선생님은 "한국 의사들은 자본을 축적해 끊임없이 병원을 세우고, 병상을 늘리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병원 사업으로 작은 병원에서 자본을 축적하여 큰 병원이 되었던 것은 이미 삼십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길병원, 차병원, 을지병원, 백병원 등이 성장하였지요.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된 1990년대 이후 작은 병원에서 자본을 축적하여 성장한 병원이 어디 있는지 저는 과문하여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의사들이 의원 및 (작은)병원이라도 세우는 이유는 이미 대형 병원들이 의사를 적게 고용하고, 또 취업을 할 적절한 의료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에는 영리법인(미국의 경우), 혹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유럽의 경우), 종교단체가 병원을 설립하고, 의사는 그저 그 안에서 일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국가나 지자체가 병원을 세우지 않을까요? 현행 수가 체제 하에서 적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의료기관이 운영될 수 없을 만큼 낮은 급여를 주기 때문입니다.

 

영리병원이요? 비급여를 전면 허용하지 않는 (혹은 비급여 환자만 취급하지 않는) 영리병원은 운영이 안 되니 생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형병원이라 한들 충분한 숫자의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습니다. 병원 1000병상 당 고용인원은 10년 전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니, 병원에서 일하는 봉직의도 과로에 시달리고, 그나마 일자리를 얻지 못한 전문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빚이라도 내어 의원을 개업해야 합니다. 역시 보험급여로는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미용성형, 피부 관리 등 온갖 시술을 해서 의료기관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경쟁이 치열하니 지금 의료계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러니칼한 것은 무상의료 주장하는 분들이 꼭 이 대목에서는 의사들의 자유경쟁을 통해 그들의 수입이 줄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의사들의 수입이 줄어들면 전체 의료비가 줄어드나요? 전체 의료비에서 의사들의 인건비는 비중이 크지도 않고, 그나마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데도? 오히려 의사 수를 늘이면 전체 공급량이 더 늘어나 의료비 총량은 더 증가하는데도?

 

시골에서는 간단한 입원실도 운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원급에서 병실을 없애자는 선생님의 주장은 대도시에서는 타당한 일인 것 같지만, 농어촌 지역으로 가면 그나마 의원급에 병실이라도 있어 싼 값에 돌보는 사람도 없는 노인들이 그나마 치료를 받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공공의료기관을 대폭 확충해주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요. 그런데 현행 수가 체제로 적자를 내지 않고 운영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보험 제도를 포기하고 국가나 지자체가 매년 일정 정도의 예산을 들여 무료로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이라면 타당할 겁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국가의 시스템과 문화로는 공공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와 민간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는 공립학교 대 학원의 교육만큼 차이가 날 것이 분명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처방, 즉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수가 재조정/본인부담 상한제, 영세병원 국가 매입 후 퇴출, 병원 300병상/의원 무병상 등은 의미 있는 정책, 별 의미 없는 정책, 부작용만 산출할 정책 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료와 교육 문제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의 결정체입니다. 한방에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섣불리 건드리면 부작용이 더 생깁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이미 국회의원이 되신 선생님께서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시고, 의사들의 실추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시고, 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더 강화하고, 그러면서도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억누르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 권복규 교수

'의료사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한의학 폐지론   (0) 2012.10.11
면허 관리 기구에 관한 두 글  (0) 2012.10.08
포괄수가제  (0) 2012.07.19
광우병은 과학과 정치가 혼재된 문제  (0) 2012.05.10
돌팔이 의술  (0) 201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