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학

광우병은 과학과 정치가 혼재된 문제

팔락 2012. 5. 10. 09:44

광우병은 과학과 정치가 혼재된 문제

 

4월 24일 미국의 젖소 한 마리에서 광우병이 다시 확인된 이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과 검역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그리고 이는 여러 측면에서 2008년 촛불사태 당시의 논란과 비슷한 점이 많다.

 

정부는 이번 광우병이 수입이 금지된 초고령 젖소에서 발생했고 광우병의 유형도 유전자 변이 등을 통해 발병되는 비정형 광우병이며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는 다른 주요 국가들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면서 검역 강화와 현지 조사단을 파견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4년 전에 촛불시위를 겪으며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다시 발생하면 쇠고기 수입을 중지하겠다고 공표했는데 지금 왜 수입을 중단하지 않는가라는 비판에 대해 수입 중지의 조건 앞에 사실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여러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 확인된 광우병이 국민 건강을 위험하게 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언론은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 위험이 과장됐다고 본다. 과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수입된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이 걸릴 확률은 0에 가깝다는 것이 이들의 근거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유독 광우병에만 민감한 이유는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들이 정치적 선동에 쉽게 휩싸였기 때문이다.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광우병의 위험을 과장하는 사람들이 MB 정권을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겠다는 속내를 가졌다고 보며 광우병 문제는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과학에 근거해서 판단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문가-시민 위험인식 크게 달라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다. 비판자들은 지금까지 많은 광우병이 젖소에서 발생했고 비정형 광우병은 오히려 정형 광우병보다 더 위험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매년 도살되는 3400만 마리의 소 중에 0.1% 정도에 해당하는 4만 마리만 검사하기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한 마리의 젖소 외에 얼마나 많은 소가 광우병이 걸려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4만 마리에서 1마리가 나왔다면 단순한 확률로 계산해도 3400만 마리 중에는 850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정 위험물질을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이것이 도축 현장에서 제대로 제거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반대의 근거다.

 

무엇보다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는다. 국민들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이란 단서를 꺼내면서 수입 중단은커녕 검역 중단도 하지 않고 있는 정부가 무능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중립적인 학자들 중에도 광우병의 위험은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정부가 그 원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문제의 근원은 정치적으로 무능하면서 경제논리만을 좇는 정부에 있다는 것이 비판자들의 시각이다.

 

광우병 논란의 근원은 전문가들의 위험 인식과 일반 시민들의 위험 인식이 다르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과학자들과 식품 안전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위험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며 이런 계산은 대부분 확률의 형태를 띤다. 확률로 계산했을 때 광우병의 위험은 0에 가까울 정도로 극히 적다. 반면에 일반 시민들의 위험 인식은 총체적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발적 선택 유무, 공포감, 미지의 정도, 전문가들의 의견 불일치, 후속 세대에의 영향, 회피 가능성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닌데 그 결과가 가공스럽고 회피할 수 없으며 전문가들에게서조차 논란이 계속될 때 시민들은 위험을 크게 체감한다. 여기에 전문가와 정부 관료에 대한 신뢰의 요소가 개입하는데 신뢰가 크면 체감하는 위험의 정도가 줄어들면서 과학적 증거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신뢰가 작을 경우 과학적 증거를 불신하면서 위험 체감도가 증가한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종류의 위험을 먼저 겪었던 선진국들이 수많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도달한 결론이다.

 

과학보다 정치적으로 문제 풀어야

미국과 영국의 경우 위험을 확률로 계산해 시민을 설득하려는 수십 년간의 시도는 엄청난 예산만을 낭비한 채 결국 실패로 끝났다고 평가되고 있다. 과학을 논하는 것은 좋지만 과학은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며 신뢰가 수반되지 않는 과학은 위험 체감도를 경감하기는커녕 이를 가중하면서 문제를 더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광우병 위험의 문제는 과학과 정치가 혼재된 문제이며 지금 우리 상황에서 해결의 열쇠는 신뢰의 구축을 지향하는 정치적 해법에 있다. 문제의 해결을 바란다면 정부는 수입 중단의 묘책이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것이 2008년 촛불시위와 지금의 논란에서 우리가 ‘과학적으로’ 배워야 할 교훈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