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상의료,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민주당 보편적복지특위 위원장인 김용익 교수는 ‘무상의료’를 주장한다. 국어사전에서 ‘무상’은 ‘어떤 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음’을 의미하며, 유의어로는 ‘무료’, ‘공짜’가 있다. 그렇다. ‘공짜의료’를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는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라고 설명한다. 장하준 교수는 그의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개별적으로 약국에 가서 약을 사는 것보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같은 정부 기관이 직접 제약 회사와 협상해서 구입하는 편이 훨씬 싸다. 공단은 한꺼번에 많은 의약품을 사는 만큼 당연히 값을 깎자고 요구할 수 있고, 국민 전체를 등에 업고 있으니 협상력도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는 약품이나 의료만이 아니라 교육, 노인 연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공동구매’의 원리가 ‘의료’에도 적용되는 것이란다. 영국에서 오래 생활을 해 온 장하준 교수의 설명은 소위 영국식 ‘사회주의 의료’의 몇 가지 본질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 복지는 공짜가 아니며 국민에게는 비용부담 의무가 있다는 진실을 잊지 않게 해 준다. 공동구매라는 용어에서 국민은 쉽게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이것이 정직한 표현이다. 실제 영국 국민은 영국식 사회주의 의료를 구현하기 위해 한 해(2010∼2011 회계기준) 1,060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92조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김용익 교수가 ‘본인부담금 완화정책’을 ‘무상의료’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직한 정치가 아니다.
둘째, 복지는 국가가 공급자를 강제로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공동구매’는 ‘계약’이라는 사실을 국민은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실제 영국은 사회주의 의료를 운영하기 위해 국가가 우월적 지위에서 민간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고 ‘계약’의 틀 안에서 민간과 협상하고 구매하고 있다. 그렇다. 영국식 사회주의 의료 조차도 계약체결의 자유를 인정한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사회보험을 운영하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셋째, 복지도 일정 부분 시장경제의 원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준다. ‘공동구매’가 ‘다량구매’로 이어질 경우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그것은 가격 경쟁(price competition)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영국은 물론 유럽의 다른 어떤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병원이 약을 싸게 사서 그 차액을 갖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며, 그것을 부당한 이익으로 보는 나라도 없다. 영국식 사회주의 의료에도 과거 우리나라의 ‘실거래가 상환제’처럼 시장경제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제도는 없다.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영국식 사회주의 의료 보다 더 강력한 규제와 강제의 틀 위에서 운영되고 있다.
영국이 사회주의 의료를 운영하는 수단은 기본적으로 ‘수요독점’과 유사한 경제학적 원리이지 획일적인 법적 강제가 아니다. 영국식 사회주의 의료의 요체는 합당한 재정투자로 규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위 ‘진보적 보건학자’들은 바람직한 ‘결과’만을 이야기할 뿐 영국이 그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해 국민이 어떠한 ‘부담’을 하고 있는지, 국가가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반면 ‘복지는 공동구매’라는 장하준 교수의 설명은 정직하다. 복지를 위해 국민이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무엇인지, 국가가 어떠한 수단에 의존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청년의사/koreahealthlog@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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