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사회적 폐쇄 그리고 학문 공동체>
아담 스미스의 말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자주 인용되는,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흥겹게 떠들고 기분 전환을 위한 자리조차 같이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결국 공중에 대한 담합 혹은 가격을 올리려는 책략으로 끝맺는다.”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Smith 1976a:144).
그와 반대로, 어느 업종이든 서로 만날 때 자신들의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담합한다기보다 아마 사업 얘기를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 사업 전쟁 이야기, 동료에 대한 험담, 사업 여건에 대한 비교, 그리고 사업에 대한 새로운 정보, 이론, 기술 등을 주고받고자 한다.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지적ㆍ사회적 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에 공동의 관심을 갖게 한다.
이것은 특히 직업을 위해 보통보다 오랜 학교교육 혹은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 해당된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복합적이고 재량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 자신의 일에 관심이 매우 크며 장기 경력으로 생각한다. 단지 자신들의 힘든 수련에 대한 낮은 대가 때문일지라도, 그들은 지식과 숙련에 전념하게 되고, 이를 발전시키고 그 완결성을 지키고자 한다. 그들은 바로 사회적 폐쇄를 통해 그렇게 한다.
이러한 폐쇄가 없다면 지식과 숙련은 형식화될 수 없다. 그들의 일은 관할영역의 경계를 그으며 제도화되고, 그럼으로써 정합성을 갖는 혹은 최소한 인식될 수 있는 학문으로 유지되고 장려될 수 있다. 폐쇄가 없다면 학문으로 존재할 수 없다.
전문화된 형식적 지식과 숙련이 발전하려면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의 집단이 필요하다. 그들은 그 지식과 숙련을 배우고 실천하며, 동일시하고, 다른 학문과 구별하고, 그리고 서로를 동료로 인식한다.
이 동료 의식은 일련의 임무, 기술, 개념, 그리고 일의 문제점들을 공유하는 같은 훈련과 경험에서 비롯되며, 그들은 서로 간에 교제를 바라고 논쟁을 위해서라도 같이 모이는 기회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런 집단이 콜린스가 말하는 “공통적이고 독특한 경험, 관심과 자원을 기초로 형성되는”(1979:134) ‘의식 공동체’(1979:58)라면, 이것은 배타적일수 밖에 없다. 만약 이 집단이 경험, 이익, 그리고 전념에 대한 의식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을 회원에서 배제하지 않는다면, 전혀 성질이 다른 집단이거나 아마 집단이랄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 집단이 배타적이기는 하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포섭적inclusive이라는 점이다. 경계선 혹은 독점적 관할영역을 형성하는 것은 회원으로 하여금 형식적 지식과 숙련의 공통적 본체나 학문에 집중하게 한다. 경계선이 없다면 형식적 학문은 고사하고 심지어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경계선들은 여러 학문이 상호간에 지식과 숙련의 형식적 본체가 발전, 육성, 실천, 세련되게 다듬고, 확장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보호막을 강화한다. 경계선 안에서 의견을 다투거나 토론이 활발하게 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지만, 그래도 다른 한편 여러 다른 학문 공동체와 일반사회 모두의 바깥에 건재하는 경계선을 확립한다. 어찌되었건 이 모든 것은 결국 노동의 분업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한다.
-- 프로페셔널리즘, 엘리엇 프라이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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