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사협회는 회원징계를 할 수 없다
이 명 진
대한의사협회 내에는 의료법 28조에 의거하여 자격정지 처분 요구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게 되어있다. 또한 의료법제66조 따라 윤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자격정지 처분을 요구할 수 있고, 보건복지부장관은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자율징계권이 중앙회에 일부지만 주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각 중앙단체등이 자체 징계를 결정하고 복지부장관에게 징계를 요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타 중앙회는 논외로 하고 의사협회의 문제만 다루어 보았으면 한다.
윤리위원회는 징계활동을 통해 의사들의 전문성과 윤리수준을 유지하는 자율규제(self-regulation)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러한 윤리위원회의 목적이 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의사협회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필요한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의사협회는 의사회원들을 위한 이익단체의 성격과 의료전문가의 수준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먼저 전문가 단체로서 전문직업성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의사보수교육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금년부터 시행되는 면허신고제 이전에는 보수교육을 받지 않고 면허를 유지하는 회원들이 상당히 많았다. 지금까지 이들을 관리할 권한이 의사협회에 전혀 없었다. 다음으로 이익단체로서의 의사협회는 수가계약과 의사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에 대해 강력한 투쟁체의 성격을 띠어야 할 것이다. 이익을 지켜주고 얻어 오기 위해서는 회원과 국민들의 신뢰와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의사협회가 회원들을 징계하면서 회원들의 단합을 유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익단체가 직접 소속 회원들에 대한 징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짐이다. 특히 면허에 관한 행정 처벌을 하려고 할 때 회원들의 반발이 상당 할 것 같다. 징계를 받은 회원이 만약 징계에 대해 수긍하지 못 할 경우 강제조항이 아닌 협회비를 내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세를 규합하여 협회 활동에 대한 반대세력으로 남아 의사협회의 힘을 분산시키려 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는 이러한 미묘한 의사협회의 입장을 간파하고 이미 일찍부터 의사협회는 의사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조합 (Trade Union)의 성격으로만 활동을 하고, 회원징계와 전문직업성 관리에 관한 사안들은 별도의 면허관리기구를 만들어 관리하도록 제도화하였다.
미국의사협회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AMA), 영국의사협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 BMA) , 캐나다의사협회(Canadian Medical Association CMA)에서는 회원들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협회내에 윤리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이들의 역할은 의사윤리강령의 업그레이드 작업, 진찰실 가이드라인 작성등 의사들의 행동강령과 역할 규정작업등을 주로 하고 있다.
미국은 약 70여개의 주면허관리국(State Mecical Board; SMB )에서 담당하고, 영국의 경우는 GMC (General Medical council)에서 캐나다의 경우는 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 에서 회원징계와 보수교육확인 작업등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11년 일본의 의료법을 모방하여 만든 틀이 지금까지 물려내려 오고 있기에 의사협회의 성격규정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당분간 의료법에 묶여 있기 때문에 회원에 대한 자율징계와 이익단체의 이중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더 이상 어정쩡한 의사협회의 역할을 유지 할 수는 없다. 외국의 사례를 분석하고 연구해서 의사협회의 성격과 역할을 재정립해야한다. 기존의 이상한 틀을 벗어던지고 판을 다시 짜야만 할 때가 온 것 같다. 일대 변혁의 시기가 다가 왔다. 이제라도 의사협회는 협회의 역할과 성격을 명확히 구분하는 개혁 작업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개혁의 결과는 회원들과 국민들에게 신뢰를 가져다 줄 것이다.
2. 의사집단의 위상과 면허의 가치를 올리려면
안덕선(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 고려의대 성형외과학교실)
대한의사협회 새 집행부는 의사의 자정노력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이 문제는 2000년대 초반 WTO DDA협상이 진행되면서 서비스 분야의 개방과 면허상호인정에 관한 논의에서 외국의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한 선진 면허제도 검토와 우리나라 면허의 문제점 등이 이미 지적된 바 있다.
선진국은 우리와 같이 종신 면허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의사면허를 부여하는 것은 의사의 역량이 유지되고 있을 때를 전제하고 있다. 캐나다나 영국과 같이 매년 의사 면허등록을 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미국과 같이 매 2년을 기본으로 주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약간 상이하다.
면허등록은 반드시 등록비 납부와 함께 신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면허세라는 이름 대신 등록비라는 용어의 사용은 돈을 받는 기관이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면허관리기구는 면허의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수혜자 부담 원칙으로 하고 정부는 여기에 대한 세금 공제의 혜택을 준다. 이유는 면허기구는 인력을 고용하여 직장을 창출하기도 하고 의사직무 수행에 필요한 투자로 간주한다. 선진국의 면허기구는 재단법인단체로 민간공공단체란 표현이 적절하다. 정부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인 면허관리의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는 실제로 면허관리를 위한 부서에서 2~3인이 이 업무에 종사한다.
온타리오주 면허기구는 약 2만 명의 의사를 관리하는데 직원 숫자도 200명 정도 되고 건물의 크기도 우리 의협건물의 크기와 비슷하다. 200명 안에는 전문의 출신 전담의사가 레지스트라(Registrar)란 이름으로 10명 정도 일하고 있다.
이들을 주축으로 조사를 담당하는 전직 경찰관을 비롯해 사회학·정치학 등 박사학위를 소지 한 정책담당과 연구담당·행정직이 있다.
의사들이 자율규제단체를 운영하는 것은 의사들은 사회에 공익적인 업무 수행의 의무가 있고, 공익에 위반하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내부사정을 제일 잘 아는 전문직에 처리를 위임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며, 사회적 갈등과 낭비를 막는 지름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 면허제도는 일본 식민지제도 답습
한국·중국·일본·대만의 동아시아 나라는 문화적으로 가족적 사고의 특성이 있어 의사들로 구성된 의사단체는 당연히 의사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잘못했을 경우 이것을 처벌하기보다 두둔하고 감싸고 대변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의사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의사단체는 19세기부터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할 조합성격의 의사회와 자율규제를 위한 의학협회(면허기구)를 분리시켜 발전하여 왔다. 의사와 의사 사이에서 이해갈등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즉 의사 한 명이 잘못함으로써 나머지 의사에 대한 이미지와 전문직에 대한 위상을 추락시킬 수 있어 타 회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은 회원 간의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사 직종의 번성과 회원의 명예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예방이 중요하고 이러한 사항이 발달하였을 때 전문직 내에서 자율규제가 힘을 발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 입장에서 한국의 의사면허는 면허관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의사의 윤리성에 대한 담보 장치가 없어 면허 상호인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천명하였고,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현재 3년 마다 하는 의사면허 신고제는 의사의 실질적인 행정처분과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영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매년 활동의사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의료 수요에 대한 정확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소재지 파악이 안 되는 의사는 자동적으로 의사면허를 상실하게 되어있다. 면허를 사용하는 사용자나 의료의 수혜자 모두 면허에 대한 조심성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의료제도와 면허제도는 구일본 식민지 제도의 답습으로 자율규제에 대한 개념이 없던 동아시아 문화에서 의사들은 스스로 면허관리를 하겠다는 발상이 불가능하였다고 보인다.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의 과거제도가 근간이 된 공무원조직이 전문직조직을 추월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일제 때부터 의사들은 정부나 정치 지배계급의 피지배계층으로 자리 잡았고 의사들 스스로 뭉쳐 자율규제를 한다는 것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정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이런 문화자산의 제한은 군사 독재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율규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회원들은 면허신고나 등록에 대해 반발하기도 한다. 자율규제를 마치 정부의 행정력에 의한 또 다른 피해로 간주할 수도 있다.
면허제도의 근간인 자율규제 정신은 800년 전통의 길드 조직의 자율규제에서 출발했다. 조직원의 이익을 위하여 생산된 품질의 보장과 가격 통제를 했으며, 일부 회원들의 윤리성 문제로 다른 회원의 피해를 방지하는 자율적 규제를 했다.
10만 의사 회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양의학의 근대사와 의사단체의 발달사를 알릴 필요가 있다. 서양의학의 의사단체의 발달에 대한 문화적 차이점의 이해는 동아시아 의학교육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의사로서 자율규제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할 때 공권력을 갖고 있는 정부 행정력에 의한 비전문적이고 불합리한 판단에 의한 행정처분의 남용도 상정하여 볼 수 있다.
의사집단이 진정한 전문직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규범화 하지 못한 자율규제에 대한 회원들의 집중적인 관심과 의사회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급속 성장은 반드시 경제적인 면으로 국한될 수 없다.
이제는 우리 의사집단이 모범적인 자율규제를 달성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우리 의사집단의 위상과 우리의 면허의 가치를 올려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여 의사직종의 번영을 도모하여야 할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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