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르치려 함은 눈동자에 빛을 비추려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수축된다."
-- 올리버 웬들 홈스, 법률가
대다수 사람들은 상황이 달라지면 자신의 편견을 바꾸기보다는 고수하는 데 더 많은 심적 에너지를 쏟아 부을 것이다. 종종 자신의 신념을 논박하는 증거가 나타나도 '예외가 있음은 규칙이 있다는 증거이다.'라며 빠져나간다. 일련의 실험은 편견이 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편견과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 사이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편견에 부합하는 정보보다 부합하지 않은 정보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부조화를 일으키는 증거를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회피할 방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배치되는 정보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유지하려면 심적 노력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적 감정들을 억누르는 데도 심적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졸리거나 낙심했거나 화가 났거나 걱정이 있거나 술에 취했거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등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는 심적 억제력이 떨어져 편견을 좀더 기꺼이 표현하게 된다.
실험에서도 피험자들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부정적 감정을 성공적으로 통제하지만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하자마자 혹은 그들의 자기존중감이 동요되자마자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인 이유로 들며 자신의 편견을 표현한다.
편견은 자문화중심주의의 에너지이다. 숨어 있는 편견을 자문화중심주의가 불러내어 더러운 작업을 맡기면, 그제야 우리 선량한 사람들이 이따금 하고 싶어하는 나쁜 일을 정당화한다. 즉 편견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하고 싶은 못된 짓을 정당화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려는 것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우리와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진정한 종교는 단 하나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점하고 있는 현재의 지위, 힘, 특권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군가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과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습이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며, 그들이 우리 문화에 동화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와 다르고 나의 자존감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자기정당화를 위한 노예인 편견을 이해하면 일부 편견을 근절하기가 어려운 이유를 더 잘 알 수 있다. 그 편견들을 사람들로 하여금 '나는 선량한 사람이다.'와 '나는 그 사람이 정말 싫다.' 사이의 부조화를 줄여주면서도 자신의 중요한 사회적 정체성을 정당화하고 방어해 주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편견이 줄어드는 조건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경쟁이 완화될 때,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학교에서 인종 구분이 사라졌을 때, 그들이 더 친숙하고 편안해졌을 때, 우리가 그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이다.
모든 사람이 나름의 맹점들을 갖고 있다면 자기 교정의 가장 큰 희망은 우리 자신의 바람과 확신밖에 볼 수 없는 거울들의 방에 갇히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믿을 만한 반대자(naysayer)가 필요하다. 기꺼이 자기정당화라는 보호용 풍선을 터뜨려주고 우리가 현실에서 너무 멀리 벗어날 때는 제자리로 이끌어주는 비판자들 말이다. 이는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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