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자만하는 뇌와 기억

팔락 2012. 5. 17. 15:49

연구에 따르면, 뇌는 일을 그르친 데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때조차 변명을 늘어놓는다. 며칠만 지나면 아무렇지도않게 더욱 노골적인 변명을 늘어놓을 정도다.

 

이 현상을 연구한 한 실험에서, '손재주와 인지 지각 협응'을 평가한다며 대학교 남학생에게 과제를 냈다. 물론 남학생들의 자아는 그것을 식은 죽 먹기로 여겼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남학생들 왈, 저는 손재주가 좋아서 인지 지각이 조화롭게 작용해요.)

과제를 수행한 남학생들은 무작위로 '인지 지각이 조화를 이룬 손재주꾼' 또는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오십보백보의 실력'이라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평가 직후나 며칠 뒤에 남학생들은 과제를 잘하거나 못한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자만하는 뇌가 과제에 대한 기억을 편집할 수 있도록 며칠을 보낸 뒤 이유를 설명한 남학생들은 평가 직후 이유를 설명한 남학생들보다 더 자기 향상적(self-enhancing)이었다.

 

물론 기억은 자아의 든든한 아군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좋은 기억은 뇌 세포 속에 확고한 기반이 보장되는 반면, 나쁜 기억은 그 속에 자리 잡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인성 검사를 받고 나서 그 검사 결과에 비추어 우리가 보일 만한 행동의 목록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나중에 과연 '외모를 갖고 남을 놀렸다'거나 '부모님에게 자주 거짓말을 했다' 같은 부정적 행동들을 기억할까, 아니면 '이웃 장애인이 페인트칠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비밀을 지켜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었다' 같은 긍정적 행동들을 기억할까?

직감적으로는 자신이 고약하고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긍정적 자아상과 충돌하게 되어 더 오래 기억될 거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실험자들이 피험자들에게 이런 가짜 인성 검사를 했을 때 그 결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친절하고 명예로운 행동이 떠올랐다. 이것은 뇌가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데 시간을 들이려고 하고,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을 들이지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정적 피드백이 기억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울 듯하다.

 

기억은 뇌가 정보를 들여올 때 뇌와 공모할 뿐만 아니라, 뇌가 내보내는 정보도 통제한다. 모든 뇌에는 자아상과 관련된 개인적 기억의 막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들어 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자아상은 편의대로 자아변신(self-shifting)을 한다. 지금 입고 있는 자아상이 더 이상 우리의 동기와 맞지 않으면 미련없이 뇌는 더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기억이다. 그것은 새로운 환경에 잘 맞아떨어지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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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하는 뇌는 언제나 가장 매력적인 자아상에 확실히 들어맞는 기억을 끄집어낸다. 살아오는 동안 있었던 복잡한 여러 자전적 사건들로 가득한 거대한 옷장에서 기억은 원하는 자아상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기억들을 꺼내서 내세운다. 수줍어하는 내향적 성격보다 외향적 성격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들으면, 재빨리 쉽게 의식화할 수 잇는 기억 가운데서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본성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자만하는 뇌의 든든한 보호 장치로는 추론도 있다. 이것은 좀 이상하게 들리 수도 있다. 무릇 추론이란 우리를 진실로 안내하는 나침반이 아닌가? 그런데 실상은, 특히 우리의 자아가 공격을 당할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 봤자 결론은 급조되어 부실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 진실을 가려내는 배심원보다는, 의뢰인의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똑똑한 변호사처럼 행동하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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