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약 효과(placebo effect)의 존재가 어떻게 증언서를 무가치한 증거로 만들게 되는가를 지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증언서가 특정한 주장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일반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다른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여야 한다.
사회심리학자와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기억과 의사결정에서 생생함 효과(vividness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을 연구해 왔다. 사람들은 문제해결 또는 의사결정 상황에 처하게 되면 기억으로부터 주어진 환경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정보를 인출해 낸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 보다 접근하기 쉬운 사실들이 선택될 확률이 높다. 접근가능성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의 하나가 정보의 생생함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어떤 일이 일어났거나 아니면 어떤 것이 참이라고 말하는 개인의 성실한 증언보다 더 생생하거나 강제적인 것은 없다는 점이다. 개인적 증언의 생생함은 흔히 보다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는 다른 정보를 뒤엎어버리게 된다.
여러 가지 제품들에 관한 정보를 주의 깊게 연구하여 구매결정을 하였건만, 마지막 순간에 다른 제품의 우연한 권유에 의하여 선택하였던 물건을 사지 않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자동차 구입이 전형적인 예다. 소비자보고서에서 수천 명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읽고, 전문가의 추천으로 X라는 자동차를 사기로 결정하였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우연히 잘아는 친구가 X를 구입하였는데 정말 엉터리여서 수리하는 데만 상당한 돈이 들었고 그래서 다시는 그 차를 사지 않으려고 작심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확실히 이런 단일 데이터가 우리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그 결정은 수천 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전문가의 판단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생한 단일 증거에 비중을 과대하게 부여하려는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자동차를 구입하는 상황을 보면, 생생한 증언서 증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심리학에서만 특유하게 보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유명한 과학잡지인 네이쳐지의 워싱턴 특파원 스티븐 부디안스키는 의학의 상황을 과학의 여러 특징들을 강조하는 진술로 요약하고 있다.
과학은 개인적인 것을 기피한다. 이러한 경향을 과학자들의 근본적인 냉담성 탓으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과학자들이 자연계에서 원인과 결과를 탐색할 때 개인의 경험들을 절감(切減)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는 사실이야말로 20세기에 획득한 위대한 지적 승리 중의 하나다.
보건과학은 특히 어려운 시절을 겼었다. 예컨데,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병에 걸리면, 어떤 '치료법'을 사용하든 차도가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 치료에 만족한 고객의 증언서에 의해 끊임없이 지지받고 있는 돌팔이 치료법의 외형상 시들지 않는 인기는 우리가 개인의 경험을 넘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 신판 심리학의 오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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