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자기 정당화와 기억

팔락 2011. 3. 26. 12:55

연구자들이 남편과 아내들에게 가사를 몇 퍼센트나 부담하는지 물었을 때, "지금 농당하세요? 거의 다 제가 하지요. 최소한 90%는." 라고 말하는 아내들과는 달리 남편들은 "사실, 아주 많이 합니다. 40%쯤."이라고 답했다. 정확한 비율은 부부마다 다르지만, 그 합은 늘 100%를 크게 웃돈다. 배우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쉽지만 그보다도 부부가 각기 자신의 공헌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처럼 기억은 우리 내부에 웅크리고 있는 자기정당화에 종사하는 역사가 노릇을 한다. 사회심리학자 앤서니 그린발트(Anthony Greenwald)는 자기(self)를 '전체주의적 자아(totaliarian ego)'에 지배당하는 것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듣고 싶지 않은 정보는 가차없이 지우고, 여느 파시스트 지도자들처럼 승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주의 통치자가 미래 세대들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쓰는 데 반해 전체주의 자아는 자신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바 우리도 자신의 역사를 쓸 때 정복자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고 자신이 한 것, 혹은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좋게 평가되고 생각되게 가공하는 것이다. 잘못이 있었다면 그 과오를 다른 사람이 저질렀다고 기억하게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죄 없는 구경꾼 역할을 했을 뿐이다.

 

가장 단순한 수준에서 보면 기억은 확증 편향이 원활히 작동하게 해줌으로써, 자신의 소중한 신념에 상충하는 반확증(disconfirming) 정보를 선택적으로 잊게 함으로써 부조화를 해소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현명하고 이치에 닿는 생각들을 기억하려 애쓸 뿐 구태여 어릭석은 생각들을 기억함으로써 마음을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조화 이론은 우리 편이 제기한 어리석은 주장을 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이 만든 좋은 주장도 편리하게 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리 편의 견해를 지지하는 어리석은 주장은 부조화를 일으킨다. 그 견해의 현명함이나 그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지능에 대해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적의 현명한 주장도 부조화를 일으킨다. 상대편이 옳거나(그럴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일 일면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부조화 이론은 우리 편의 어리석은 주장과 상대편의 현명한 주장이 부조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들 주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재빨리 잊어버릴 것으로 예측한다.

 

1958년 에드워드 존스와 리카 콜러가 인종 간 차별 대우 철폐에 대한 태도를 고찰한 고전적 실험에서 이를 증명했다. 이 실험에서는 양측 모두 자기네 견해와 일치하는 타당한 주장과 상대편 견해와 일치하는 타당성 없는 주장을 기억하고, 자기네 견해를 뒷받침하는 타당성 없는 주장과 상대편 견해를 뒷받침하는 타당한 주장은 잊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우리의 기억은 놀랄 만큼 자세하고 정확할 수 있다. 우리는 첫 키스와 좋아했던 선생님을 기억한다. 가족 이야기, 영화, 데이터, 야구 통계치, 유년기에 겪은 창피했던 일과 자랑스러운 일을 기억한다. 생애에서 중심적인 사건들도 기억한다. 하지만 기억이 잘못되었을 때는 이유가 있다. 기억의 일상적인 부조화를 줄이는 왜곡은 우리가 세계와 그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여 선택과 신념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왜곡은 가지내념을 일관되게 유지할 필요성에 의해 동기활될 때 더욱 강력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자기위주 왜곡이 작용함에 따라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잊거나 왜곡하고, 그 결과 차츰 자신의 거짓말을 믿게 된다.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알면서도 점차 자신만의 허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상황은 늘 복합적이기 마련이다. 자신의 책임을 저평가하다 보면 원래의 엄청난 실체는 흔적만 남게 된다. 오래지 않아 자신을 설득하여 우리가 공공연히 말햇던 것을 믿게 된다. 리처드 닉슨의 참모로 워터게이트의 불법 활동을 은폐하려는 음모를 폭로한 존 딘은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터뷰 진행자 ; 그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들이 자신의 거짓말을 믿고 있었다는 뜻인가?

 

; 그렇다. 자주 언급하다 보면 사실이 된다. 예를 들어 언론이 기자들과 백악관 참모들에 대한 도청에 대해 알고 있어 잡아떼기가 쉽지 않자 그들은 국가안보 상황이라는 주장을 제시했다. 도청을 국가안보 사항으로 믿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지어낸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했을 때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주장이 진실이라 믿었다. 

 

# "내 기억은 `내가 그것을 했다`라고 말한다.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라고 말하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기억이 굴복한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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