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윤리학 교수인 고든 마리노는 재킷에서 펜이 떨어지는 바람에 호텔 실크 침대 커버에 얼룩을 묻혔다. 지배인에게 알릴까 생각했지만 몸도 피곤했고 손해를 배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친구 몇명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중에 그는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한 친구가 내게 도덕적 결벽증에서 벗어나라고 말했다. 경영진이 그런 사고까지 예상하여 숙박비에 포함시켜놓았다는 것이다. 괜히 지배인만 번거롭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내 자신을 설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논리는 이러했다. 만약 민박집에서 잉크를 엎질렀다면 즉시 주인에게 알렸을 테지만, 호텔인 만큼 누가 어떻게 속이는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나는 호텔을 떠날 때 프런트에 메모만 남기고 나왔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행위를 정당화하는 모든 근거가 옳다고 말한다. 호텔 숙박비에는 부주의한 고객들로 인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는 세금을 낭비한다. 회사에서는 이메일을 보내는 데 시간을 조금 허비했다 하더라도 맡은 일만 다 한다면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선을 넘을 때 우리는 우리가 잘못이라고 알고 있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범죄자나 도둑이 아닌 정직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의 행위가 호텔 침대 커버에 잉크를 엎지러는 것과 같은 사소한 것이든 횡령 같은 중대한 것이든 자기정당화의 메커니즘은 똑같다.
그런데 남을 속이기 위한 의식적 거짓말과 자신을 속이기 위한 무의식적 자기정당화 사이에는 매혹적인 회색 영역이 존재한다. 이곳을 순찰하는 것은 미덥지 못하고 가지기준으로 판단하는 역사가, 곧 기억이다. 기억은 종종 과거 사건의 윤곽을 흐리게 하고, 범죄성을 호도하며, 진실을 왜곡하는 자기고양편향(ego-enhancing bias)에 의해 재단되고 형성된다.
# 인간은 그들이 갖춘 도덕적 장비에서 매우 훌륭하고, 그것을 남용하려는 성향에서 비극적이며, 그러한 남용에 대해 선천적으로 무지하다는 점에서 애처로운 종이다.
-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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