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한까: 한방을 비판하는 사람들, 한빠: 한방을 옹호하는 사람들, 입결: 대학입시결과 )
여기 글을 읽다보면 한빠와 한까 사이에 영원히 평행을 달릴만한 의견이 존재하는 걸 볼 수 있다.
그건 입결도 아니고 페이는 더더욱 아니다.
난 한의사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한의대가 입결이 얼만지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한의학 자체가 가치가 있고 필요성이 있고, 실제로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한의학이 앞으로 투자할만한 미래가치가 있는 학문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한의사도 돈 많이 벌고, 입결도 상위 1% 다 쓸어가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면 한의사가 버는 돈은 뭔가 잘못된 돈이고, 돈을 못 번다해도 아무 할 말이 없으며, 최상위권 학생들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한의학에 관한 가장 큰 의견 차는 다름이 아니라 한의학이라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다.
물론 나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일방적으로 세뇌 당했거나, 인지부조화로 인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거나)
특히 한의대생, 한의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든 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착각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고로, 내가 여기에 대한 입장을 꽤 성의 있게 정리해 보고자 하니, 천천히 한번 읽어줬으면 한다. (특히 의학/한의학 종사자들 아닌 사람들)
한빠 진영 및 대부분의 일반인이 생각하는 한의학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A. 의학 = 양의학 + 한의학
이게 가장 큰 착각이자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흔히 이렇게 나눈 이후 각각의 특성을 아래와 같이 부여하고는 한다.
1. 의학은 서양에서 발전하여 기계론적 생명관과 환원주의에 바탕을 둔 양의학과, 동양에서 발전하여 종합적이고 전일론적인 방법으로 발전한 학문으로 양분된다.
2. 양의학은 수술과 같은 외과적인 면에 특화되고, 한의학은 몸을 강화시켜 질병을 예방하는 생활적인 면에 특화되었다.
3. 양의학은 급성질환, 한의학은 만성질환에 강점을 지닌다.
4. 양의학은 인공적인 추출물을 통해 치료하며 부작용이 많고, 한의학은 천연물을 통해 치료하며 부작용이 적다.
이외에도 몇 가지 인식들이 더 있지만, 위에 적은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현재 생각하고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인식을 가진 채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의학 관련 의사/연구자들과 과학적 개념이 충만한 순수과학자들과 말이 통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인식이 바탕에 있으면 한까들이 하는 말 (페이 입결은 제외한다. 그런 것은 진짜 순전히 까기 위해 하는 말들이 대부분이니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 다른 나라들에서 저 '한의학' 자리에 자기 나라의 고유한 전통의학을 넣어서 비슷하게 생각하는 줄은 모르겠다. 인도에서는 아유베다를 쓰고, 남아공에서는 주술사를 넣을지도 모르겠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한의학은 전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그리고 그 어떤 전문가 집단에서도 우리나라만한 입지를 가지지 못한다. 오직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의학 및 전문가 집단을 제외한 한방 진영과 이 방면 교육을 별로 받을 기회가 없이, 그냥 들리는 대로 생각하던 보통 국민들만 저렇게 본다. 이것은 국수주의를 포함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된, 매우 왜곡된 정의이다.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그리고 실제 우리나라에서 의사와 한의사의 직업 권한을 부여하는 의학의 분류는 아래와 같다.
B. 의학 = 현대의학 + 대체의학
여기서 현대의학이란 치료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거쳐 현재 질병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의학이라고 보면 된다.
현대의학에 동양과 서양 같은 공간적 개념은 단 1%도 들어가 있지 않다. 서양에서 예전에 4체액설을 믿었든, 연금술사가 이상한 액체를 만들어 먹었든 그것은 더 이상 현대의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슨 근거로든 간에) 뜯어먹던 풀에서 어떤 성분이 치료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과학적으로 검증된다면 그것은 현대의학에 포함된다. 그 발상이 동양이든 서양이든, 치료에 대한 일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가 존재하면 현대의학이 된다.
한의학은 불행하게도 현대의학이 아닌 대체의학에 포함된다.
그 말인즉슨, 한의학에서 바탕에 깔고 있는 음양오행, 정기신혈, 한열 등의 개념 및 그를 활용한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전세계의 어떤 과학 책에도 음양오행이나 기에 관한 설명은 없다. 그것을 측정하고 계량화하거나, 수식화하거나 표준화할 방법이 없는 상상속의 허구이기 때문이다.)
대체의학에 대한 정의는 아주 명확하지는 않으나 Wiki 에서 수렴되는 의견은 아래와 같다.
http://en.wikipedia.org/wiki/Alternative_medicine
In Western culture, the controversial term alternative medicine is any healing practice 'that does not fall within the realm of conventional medicine', or 'that which has not been shown consistently to be effective.' It is often opposed to evidence based medicine and encompasses therapies with a historical or cultural, rather than a scientific, basis. However, the term alternative medicine has been criticized by those skeptical of such practices as deceptive.[3] Richard Dawkins has stated that 'there is no alternative medicine. There is only medicine that works and medicine that doesn't work.'
대체의학:
1. '현대의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치료 행위' 혹은 '일관성 있게 효과 있는 것으로 입증되지 않은 치료 행위'
2. 증거기반의학(EBM)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과학적이라기 보단 전통적, 문화적 기반을 둔다.
3. 대체의학이란 단어 자체조차 잘못된 느낌을 준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리처드 도킨스는 '대체의학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효과가 있는 의학과 효과가 없는 의학이 있을 뿐' 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체의학에 포함되는 치료행위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한의학은 그 중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세상에는 수많은 대체의학이 있지만 그 중 메이저한 것들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을 미국보완대체의학센터의 기준에 의해 나누면 아래와 같다.
The American National Center for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NCCAM) cites examples including naturopathy, chiropractic medicine, herbalism,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 Ayurveda, meditation, yoga, biofeedback, hypnosis, homeopathy, acupuncture, and nutritional-based therapies, in addition to a range of other practices.
어디에도 Korean medicine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전통중의학(TCM)만이 있을 뿐이다.
한의사들은 중의사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하고, 중의학과 한의학을 구별하는 줄은 모르겠지만, 대체의학 목록에도 한의학이 없을 뿐더러 중의학이 비슷한 면이 많으니, 실제 한의학의 위치는 저 중의학 자리의 작은 한 부분을 차지하는 정도라고 보면 타당할 듯하다.
의학 = 현대의학 + 대체의학 (naturopathy, chiropractic medicine, herbalism,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중의학 + 한의학), Ayurveda, meditation, yoga, biofeedback, hypnosis, homeopathy, acupuncture, and nutritional-based therapies 등)
이게 현재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한의학의 정체성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생각을 하면 그동안 괴리가 있고 모순되어 보이던 많은 개념들이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먼저 초반부에 적었던 잘못된 인식이 바탕이 된 한의학과 양의학에 대한 개념은 아래와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1. 의학은 서양에서 발전하여 기계론적 생명관과 환원주의에 바탕을 둔 양의학과, 동양에서 발전하여 종합적이고 전일론적인 방법으로 발전한 학문으로 양분된다. =>
=> 의학은 치료효과에 대한 일관성 있는 과학적 검증을 통과한 현대의학과, 그러한 근거가 부족한 대체의학으로 구별된다.
2. 양의학은 수술과 같은 외과적인 면에 특화되고, 한의학은 몸을 강화시켜 질병을 예방하는 생활적인 면에 특화되었다.
=> 수술과 같은 외과적인 치료는 물론 면역력 증가와 예방의학까지도 충분한 근거와 효과가 검증된 치료는 현대의학에 포함된다. 현대의학으로 편입되지 못한 다른 대체적 치료들은 외과적이든 내과적이든 예방적이든 그 근거가 부족한 치료라고 볼 수 있다.
3. 양의학은 급성질환, 한의학은 만성질환에 강점을 지닌다.
=> 역시 급성, 만성을 구별하지 않고 치료효과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된 치료법은 현대의학으로 편입된다. 어떠한 치료가 대체의학이라면 급성이든 만성이든 상관없이 아직 효과가 명확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4. 양의학은 인공적인 추출물을 통해 치료하며 부작용이 많고, 한의학은 천연물을 통해 치료하며 부작용이 적다.
=> 인공적 추출물인지 천연물인지는 현대의학과 대체의학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천연물이라도 치료효과가 명확히 검증되었으면 현대의학의 치료법으로 인정받는다. 다만 dosage 조절과 투약의 편의성을 위해 대부분의 경우 실제 약리효과를 가지는 물질을 추출하여 사용하는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천연물뿐 아니라 비타민, 글루코사민과 같은 단일성분 제제라도 그 치료효과가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경우 대체의학으로 편입된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끊이지 않던 논쟁도 자연스럽게 결론이 난다.
Q. '한의학 연구자들이 과학화 하겠다고 열심히 연구하면 뭘 해? 어차피 양방이 다 뺏어가서 한의사들은 쓰지도 못한다.'
A. 위의 설명대로 의사는 현대의학에 기반을 둔 치료를 하고, 한의사는 한의학에 기반 하여 치료를 한다.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어디에서 힌트를 얻었든, 치료효과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검증한다는 것은 현대의학으로 편입됨을 의미하고 의사는 그것을 사용하면 된다. 또한 이러한 검증과정은 한의학의 성과가 아니라 의학과 과학의 성과이며, 한의학적 원리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기보다 단순히 버려진다. 스티렌정의 약효를 설명하는데 한의학적 원리가 단 한 줄이라도 들어가 있는가? 한의학에서 설명하는 약쑥의 효능과 스티렌정의 효능이 같은가? 그렇다면 대체 무슨 근거로 사용하던 약쑥 대신 스티렌 정을 사용할 것인가?
Q. 의료기기는 왜 한의사가 못쓰게 막는가?
A. 역시 마찬가지로 현대의학에 기반 하여 치료를 하는데 사용되는 기기들이고 직업 권한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쓸 수 없다. 문제는 한의사가 되고자 하는 많은 어린 학생들이 이러한 차이를 모른 채, 왜곡된 정의를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한의사들이 기기를 사용하고 싶으면 맥 짚어주는 기계, 간비심폐신에 열이 있는지 재는 기계, 기가 허한지 혹은 진액이 말랐는지 보는 기계 등을 만들어서 사용하면 된다. 단 이러한 기계들을 못 만드는 이유는 한의학 자체가 그 어떤 기초학문과도 소통할 수 없는 유니크한 (개인적으로 말도 안되는) 이론을 사용하기 때문이지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다.
혹자는 위의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게 하면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기기는 충분한 교육 없이 사용되었을 때 잘못된 진단으로 오히려 해만 끼치게 된다. 만일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진단 제대로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의사면허를 따면 된다. 그게 곧 의료기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증명이 아닌가.
그렇다면 국가는 이렇게 직능이 제한되어 있는 한의사라는 업종을 왜 따로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일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정말 왜 그러냐?
부푼 꿈을 않고 한의학을 배워서 많은 사람을 치료하겠다고 들어갔는데 대체의학의 범주밖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누가 상처받지 않을까? 이건 오히려 기만에 가까운 게 아닌가.
단지 우리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과학적 근거가 없는 대체의학의 일부분을 현대의학과 동일시하는 느낌을 주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대체의학 전반을 합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일종의 술수인가?
실제로 현재의 한의원은 더 이상 '한의학적 처방을 하는 곳' 이라기보다 '의료법으로 금지된 현대의학상의 치료를 제외한 모든 대체의학을 총 망라하는 대체의학의 장'이 되어 있다.
나는 내 가족들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이 적어도 어떠한 치료법이 검증받은 치료인지, 대체의학인지는 아는 상태에서 치료를 선택했으면 한다.
한의원들이 낸 광고를 보고 저 말이 정말 근거가 있는 말일까,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었을까 의심해봤으면 한다.
(여기서 과학적으로 검증한다는 말은 무슨 기의 존재를 증명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증명이 아니다.
단지 일정 수의 환자에 그 치료법을 시행하였을 때에 플라시보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효과만 나오면 된다.
무슨 동양사상이라 검증이 어렵니 어쩌고저쩌고 해도 다 필요 없고 실제로 효과가 있다면 안 나올 수가 없다.
이것을 통과하지 못한 많은 대체의학 그리고 사이비의학 들이 특정 케이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치료 수기를 올리고, 광고와 언론플레이에 열중한다고 보면 된다. )
그러기 위해서 한의학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바로 알리려고 썼으니, 아직 개념이 명확히 박혀 있지 않은 애들은 여러 번 씩 정독하고 새겨듣길 바란다.
한의학은 대체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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