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학

전문가 집단의 제도 윤리

팔락 2010. 11. 25. 14:44
프로페셔널리즘, 엘리엇 프라이드슨, 박호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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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윤리

 나는 전문가의 업무 수행을 인도하고 판단하는 그리고 내가 다른 논문(Freidson 1999b)에서  ‘실천 윤리practice ethics’라 부른 전문직 규약의 구성요소를 경시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문직 윤리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아닐지 모른다고 제안한다. 실천 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익숙하지만 구별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는 색다른 윤리 문제를 설명하면서, 개별 실천자가 직면하고 있는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

 

 제도윤리는 상당히 다르다. 이것은 노동의 도덕적 문제를 많이 야기하는 경제적ㆍ정치적ㆍ사회적ㆍ이데올로기적 상황을 다룬다. 제도윤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전문가가 일하는 실제 현장에서 실천 그 자체에 대한 재정ㆍ행정ㆍ통제의 방법과, 실천이 행해지는 법률적ㆍ경제적 환경을 설정하고 집행하는 사회정책을 포함한다. 제도윤리는 타인을 이롭게 하고 학문의 초월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실천의 가능성을 구속하는 사회제도와 정책의 도덕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다.

 

 제도윤리는 학문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도덕적 관심에 의해 격려된다.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비난으로 가장 심하게 훼손된 것은 실천 윤리가 아니라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제도의 윤리이다. 그리고 만약에 전문직이 보수가 좋은 기술적 전문인 이상이라면, 반드시 재검토되고 강력하게 주장되어야 하는 것은 특히 제도윤리이다. 노동의 목적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자유는 무엇이 제3의 논리에 의한 제도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프로페셔널리즘의 정신이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이데올로기는 그 무엇보다도 공공선the public good을 위한 훈련된 지식과 숙련의 행사를 강조한다. 개별 학문분야는 선의 여러 측면에 관련된다. 어떤 경우에는 개별 환자들, 학생들, 혹은 고객들에 대한 즉시선the immediate good, 다른 회사와 집단, 그리고 기타의 경우에 일반선the general good이다. 그러나 그런 서비스는 항상 더욱 더 큰 공공선, 때로는 미래에 기대되는 것에 맞추어 판단과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실천자와 그 협회는 더 큰 선의 관점에서 그들이 실행하는 것을 평가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가 그들에게 국가, 자본, 회사, 고객, 혹은 일반 공중에게도 피동적 봉사자이상이 되도록 면허를 준다. 

 

프로페셔널리즘 지지자는 광범위한 정책을 결정하는 토론회와 실천을 행하는 지역사회 모두에서 강력하고 원칙에 입각한 의견을 반드시 개진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의견 개진은 평가와 항변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원천이 개인에게 권위 있는 지원을 제공하고 학문분야의 집합적 의견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단체collegial body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개인들에게 맡겨질 수 없다.

 

어떤 제도는 전문가로 하여금 혜택을 볼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에 전문직의 입장에서 의료, 교육, 그리고 법률변호 등에 동등한 접근을 부정하는 사회정책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발표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일을 잘하지 못하도록 막는 노동 환경을 제공하는 실천 기관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 여기에는 너무 과중한 취급 건수 그리고 부적당한 작업 공간, 장비와 보조인력 등이 포함된다. 이런 환경은 보상의 문제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에 논란의 여지가 있든 없든 실천 조직체에 대한 공중의 집합적 행동을 윤리적으로 명백하게 정당화한다.

 

실천 조직체의 경영 정책은 프로페셔널리즘이 이념형적 관료제의 속성이며 국가나 대기업의 권력에 의해 촉진되는 위계적 통제 그리고 과정과 성과의 규격화에 관계되는 문제를 야기한다. 완전히 실현된다면, 이념형적 관료제의 목표가 서비스나 결과의 예측 가능성과 신빙성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재량을 가능한 한 많이 줄이려고 하기 때문에 어차피 프로페셔널리즘과 다투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동적이고 자유경쟁하는 이념형적 시장에 필적하여 관료제는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재량을 바로잡는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관료제의 논리는 이미 교육된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것이 재량이 요구되는 전문직의 임무를 다루는 데 완전히 발휘된다면 관료제는 전문직의 임무를 변형시키고 그 과정에서 성과도 변형시킨다. 서비스가 위급한 개인에게 제공되는 경우 규격화는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기준을 벗어나는 사람은 적절히 제공받지 못하는 위험을 당한다.

 

연구와 개발의 경우, 합리적-법적 행정은 당장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나 관료제의 구속성 때문에 관리 이상의 효용을 예상할 수 없다. 미리 대책을 세우지 않은 지식은 잃게 될 것이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제도윤리는 합리적-법적 관료제의 단점을 누르고 장점을 키우면서, 학문의 실천이 책임을 질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재량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조직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광범위한 수준에서, 노동의 일차적 목적이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시키는 경제편중주의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은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간주해야 한다. 자영이든 고용이든 노동의 질과 그 편익의 광범위한 배분의 가능성을 희생시켜 가며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목표는 전문가에게 윤리적이 아니라고 밝혀야 한다. 또한 수익을 최대화할 목표로 전문가의 서비스에 자본을 투자하는 것은 윤리적이 아니라고 여겨져야 한다. 타인에 대한 편익이 무엇이든 간에, 이익의 최대화가 주된 목표일 때 주목과 노력은 가장 이익이 높은 서비스를 겨냥해야 하고 보다 이익이 나지 않는 서비스는 내버려둔다.

 

노동이 자유시장에 의해 조직될 때, 이익의 최대화는 시장의 논리에 따르나 전문직의 노동은 통상적인 시장의 진행과정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따라서 이익의 최대화는 분명히 그런 보호막을 정당화시키는 협정을 어기는 것이다. 비록 약간의 잠재적 이익을 희생시킬지라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선행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넘어서 개인적 이익에 맞추는 전문가는 윤리적으로 정당할 수 없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면, 다른 사람보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더 주는 제도적 장치에 강하게 저항하는 것 그리고 전문직 특권을 누리는 것의 윤리적 함의를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물론 모든 노동자는 반드시 삶을 획득해야 하므로, 이익 그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정치경제가 프로페셔널리즘을 보호하고 격려해주기 때문에, 프로페셔널리즘의 제도윤리에 정반대되는 것은 이익의 최대화이다.

 

학문분야의 전문화된 지식과 숙련이 사유재산으로 관리될 때 또 그것들이 소유주에게 요금이나 ‘사용료’를 지불할 때까지 보류된다면, 이익의 최대화를 강조하는 자유시장은 프로페셔널리즘에 특히 파괴적이다. 한편 지식이나 기술이 모든 실천자에게 공유되기보다 법으로 규정되고 보호받는 사업 비밀로 여겨지면 더욱 더 파괴적이다. 비밀주의는 지식과 기술이 성장하는 데 서로 상극이다. 왜냐하면 남들이 자유롭게 테스트하거나 타당성 검증을 막고, 파괴적이고 불화를 일으키는 집합적 경쟁을 하게 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사업 비밀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은 고객들에게 혜택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페셔널리즘에서, 지식과 숙련 혹은 학문은 사유재산이 아니었고 더구나 엄격하게 소유되지 않았다. 그것은 명료하지 않거나 전문용어로 감추어질 수 있지만 배우고 알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적으로 개방되어왔다. 더욱이 예전에 어쩌다 있었다고 하나, 경쟁적 이익을 위해 남에게 숨기는 게 아니라 모든 실천자는 이용 가능해왔다. 비밀주의가 일부 정당화되는 경우가 있다지만, 바로 그 원리는 프로페셔널리즘과 그 가치를 위험에 빠뜨리고 엄청난 비윤리적 문제로 쉽게 변할 수 있다.

 

지난 20세기말 지적 재산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평가하기 더 어렵고 복잡하나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지식과 숙련이 저작권 혹은 특허권이 있는 지적 재산으로 전환되고 최대 이익을 위해 활용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천자들은 누가 지불하던 그 권리에 대한 비용 없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지식과 숙련을 사유재산으로 만드는 것은 프로페셔널리즘의 근본적인 전제와 목표를 공격한다. 이것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과 숙련의 공공영역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격렬하고 끊임없이 반대해야 한다. 프로페셔널리즘을 진지하게 생각다면, 사유재산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개념이 학문적 연구 성과로까지 확산되지 않도록 혹은 이미 된 것은 취소하도록 시도하는 제도윤리를 공표할 필요가 있다. 재산권은 ‘천부적’이지 않다. 이것은 사회적ㆍ정치적 결정으로 확립되고 국가의 지원 없이 유지될 수 없다. 지난날 정치적ㆍ법률적 결정이 흑인, 여자, 어린이들을 소유의 사슬에서 해방시켰던 것처럼, 지식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학문을 연구하여 소중한 지식과 기술을 창조한 사람들 또 그들에게 뒷돈을 댄 사람들은 경제적 보상뿐 아니라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기 때문에 지적 재산 문제가 지나치게 단순화될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고려한다면 실제 재산권은 국가의 보호에 의존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만약 특허권과 저작권으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자유시장의 경쟁자는 재빨리 그 권리를 침해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프로페셔널리즘에서처럼, 법적 보호의 장점을 챙겨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실천에 대한 배타적 권리처럼 판매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악용되기 쉬운 특권이다. 이것을 지배하는 윤리의 원칙은 그런 재산에서 나오는 이익은 반드시 적절하게 통제되고 제한되어야 한다는 점을 포함해야만 한다. 광범위한 원칙을 넘어서 뒤엉켜있기는 하지만 하나하나 풀 수 없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아마 유전자 같이 어떤 것은 사유재산으로 절대 허용되지 않고, 다른 것들은 제한된 상황에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공공영역으로 편입될 때까지 경제적 이용이 금지되는 저작권 혹은 특허권의 보호 기간처럼, 신지식의 발견과 발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양과 종류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 문제들은 경제적ㆍ법률적 문제일 뿐 아니라 프로페셔널리즘에 관련된 근본적인 윤리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