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설명되지 않은 사건의 강한 여운

팔락 2012. 9. 5. 12:15

우리가 불쾌한 경험을 했을 때 그 경험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게 되면 불쾌한 감정이 줄어든다. 에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이나 갑작스런 질병 등과 같은 충격적 경험(외상)에 대해 글로 써보는 것만으로도 주관적 행복이나 신체적 건강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항체 증가.) 그리고 이런 글쓰기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글 속에 자기 경험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설명이 불쾌한 사건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쾌한 사건의 영향력 또한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설명되지 않고 미궁으로 남겨진 사건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감정적인 영향력이 크다. 첫째, 설명되지 않은 사건은 드물고 이례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어떤 사건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설명을 듣고 나면 그 일이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건처럼 여겨진다. 설명되지 않은 사건은 드문 일처럼 여겨지고, 드문 사건은 보통의 사건보다는 자연히 감정적으로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석양이 실제로는 계기일식보다 훨씬 더 멋진 광경을 연출하지만, 일식이 석양보다 덜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일식을 더 놀라워하는 것이다.

 

둘째, 설명되지 않은 사건은 계속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한 사건을 설명하고 나면 우리는 깨끗이 빨래를 마친 것처럼 그 사건을 기억의 서랍 속에 잘 접어 넣고는 다른 사건으로 생각을 옮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그 사건은 미스터리나 수수께끼로 남아 우리 마음 저편으로 넘어가는 일이 없다. 영화제작자들과 소설가들은 종종 마지막 장면에 미스터리 같은 종말을 제시하여 이런 현상을 이용한다.

 

결국 설명하는 행위는 어떤 사건을 평범하게 보이게 하고,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 사건으로 인한 정서적 영향력을 빨리 감소시켜 버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어떤 사건을 실제로 설명하지 않고, 그저 설명한 것처럼 느끼도록 하기만 해도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중

 

# 1967년에 미국에서 상연된 <유혹 Bedazzled>라는 영화에 멋진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 나오는 악마는 며칠 동안 책방에 틀어박혀 각종 미스터리 소설의 마지막 쪽을 모두 찢어버렸다.

별 것 아니라고? 한 번 상상해보라. 당신이 아주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읽다가 드디어 마지막 쪽까지 왔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내용이 사라져버렸다면 어떨까? 아마도 사람들이 왜 자기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 사실을 알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은 아주 강력한 욕구다. 하지만 당신이 무언가를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기 전까지는, 그 호기심이 얼마나 당신을 좌우할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