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페스팅어 교수의 인지부조화 이론 연구

팔락 2012. 9. 12. 14:25

세상에 말세가 오고 머지않아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은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면 어김없이 출현하는 사이비 종교의 단골 레퍼토리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1956년에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Leon Festinger)가 한 사이비 종교집단을 대상으로 행한 연구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이 연구에서 페스팅어 교수는 그의 조수와 함께 신도로 가장하여 사이비 종교 집단에 직접 잠입하여 분석하였다. 이때 페스팅어 교수는 이미 인지부조화 이론을 정립하고 있었고, 연구의 목적은 인지부조화 이론에 바탕을 두고 휴거가 실패로 끝난 뒤 신도들의 반응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그의 조수는 휴거가 불발로 끝나면 충성을 많이 한 신도들이 교주를 격렬하게 비판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페스팅어 교수는 그 반대로 충성도가 약한 신도들은 교주를 비난할 것이지만 충성도가 강했던 신도는 교주에게 더욱 강한 믿음을 바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신도들에게 곧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지구 최후의 날에 우주선이 나타나 독실한 신도들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곤 했다. 그러자 신도들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살고 있던 집도 처분하고, 모아두었던 돈도 다 써버리며, 영원한 구원의 삶을 얻게 될 지구 최후의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교주가 말한 지구 멸망의 날이 왔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기다리던 우주선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도들은 초조해하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워하는 신도들에게 사이비 교주는 이번의 경우에는 신도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은가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고 둘러대었다.

 

그러면서 이번 일로 당신들은 어려운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으니 며칠 뒤에 진짜 지구 멸망의 날이 올 때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다시 그 교주가 예언했던 지구의 마지막 날이 왔다. 하지만 그 날도 역시 지구는 멀쩡하게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교주는 다시 힘주어 말했다.

 

"여러분의 위대한 믿음이 결국 지구 전체를 구원했노라!"

 

이쯤 되면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그 교주를 당장에 엄벌에 처하라고 노발대발했을 법 한데, 정작 신도들이 보인 행동은 너무도 달랐다. 그들은 그 사이비 종교와 교주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져 종전보다 포교활동에 더 억척스럽게 매달리는 특이한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기에는 심리적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잘못된 행동을 바꾸자니 후유증이 너무 클 것 같게 되자, 오히려 태도를 바꿔버린 것이다. 직장 잃고, 집도 없고, 돈도 다 떨어져버린 상황에서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차라리 자신들이 선택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엉뚱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인지부조화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이라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한 개인이 심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두 가지 인지(사고, 태도, 신념, 의견)를 가지고 있을 때 생겨나는 긴장상태를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두 개의 인지는 서로 상반될 때 부조화 한다. 충성스런 신도에게는 자신은 어리석지 않다는 신념과, 휴거 소동과 관련하여 자신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라는 두 인지가 서로 부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분명히 잘못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주장이나 행동을 철회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갖은 괴변을 동원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인지 부조화에 따른 자기정당화의 심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개인이나 조직 더 나아가서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단 한 번 내린 결정에 대해, 인지 부조화 현상이 나타나면, 잘못된 판단에 대해 신념을 바꿔 부조화를 줄여나가려고 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자신이 내린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고 간다. 즉 자신의 믿음을 바꾸는 대신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조화에 대한 요구가 워낙 강하다 보니 부정할 수 없는 증거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기존의 신념을 유지하거나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증거를 비판, 왜곡, 기각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러한 심적 왜곡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 현상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자존심이 약한 사람은 잘못된 결정을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탓하는데 심리적 저항이 적기 때문이다. 또한 잘못된 믿음에 따른 행동에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인지부조화의 덫에 깊게 빠진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니 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다른 선택이나 견해는 돌아볼 겨를이 없다.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가기 때문에 옆이나 뒤를 살펴볼 여지가 없다. 주변의 어떤 이야기도 통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는 점점 깊은 단절의 늪에 빠져 들어간다. 그리하여 결국 스스로를 "바보의 벽" 속에 가두어 막다른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크고 작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이 선택한 언행의 당위성을 강변하거나 합리화하려고 하게 되면 점점 더 두터운 바보의 벽에 갇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용기 있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바꿔 다시는 그런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하면 주변으로부터 더욱 두터운 신뢰감이 쌓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지부조화 이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사실들을 실제로 실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