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군중심리를 이용해 한 몫 보고자 하는 부류 있어
이런 행위가 건전할 때는 득이 되나 나쁜 방향으로 흐르면 독소
2008-08-03 09:59:41
역사적으로 지도자는 군중심리를 묘하게 이용하여 왔다. 긍정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고 부정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다. 긍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약이 되지만 부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독이 된다.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이길 때는 충신이 되고 질 때는 역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 중 상당한 사람은 충신이 되기 위해서 위험한 도박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자는 선동을 직업으로 하여 삶을 사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군중심리와 대비되는 말로 여론이라는 것이 있다. 군중심리와 여론의 차이는 군중심리는 순간 집단성이 있지만 여론은 장기 집단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은 군중심리다.
우리는 건전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회변화와 비용을 가져오는 군중심리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이의 속성에 대해서 냉정할 필요가 있다.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사람은 주로 정의감이 강하거나 의협심이 강한 부류다. 그들 대부분 순수하나 이들 중 일부는 몇 마리의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게 만들 듯이 선동하는 배후의 실체도 모른 채 휘말려들어 마침내는 물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없을 지경까지 만드는데 일조를 하기도 한다.
군중심리란 사회심리현상의 하나로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 속에서 개성을 잃고 군중과 일체화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군중심리가 일어나는 원인으로는 개개인의 이성과 개성이 마비되는데서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정치나 마케팅에서는 이 원리를 선거와 폭동, 여론조성을 통에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이들 과정이 진행되는 중에는 자기최면에 의해서 모르고 있다가 상황이 끝난 다음에서야 깨닫게 된다. 그러고 한 번 한 행위에 대해서는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일반인들의 속성이다. 빤히 그 잘잘못을 알면서도 자기의 유 불리를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군중심리를 가장 잘 이용한 사람은 히틀러 시대의 선전장관 괴벨스(Goebbels, Paul Joseph, 1897.10.29~1945.5.1)였다. 이 사람은 군중을 선동하기 위하여 과학적 기법까지 동원을 하고 실험을 하였다. 즉 대중 조작을 하기 위하여 방송을 한다고 하였을 때 주방에서 일하던 주부가 방송에 귀 기울이는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타임워치로 측정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군중심리를 일으키는 공통적 요인이 있는데 첫째는 익명성이다. 익명성이 보장될수록 군중 속에 몰입되어 자기이성을 잃게 된다. 둘째는 무책임이다. 군중 속에서는 개개인의 행동을 분간할 수 없으므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 때문에 나타난다. 셋째는 무비판성이 발동한다. 급히 흘러가는 흐름 속에 신속히 휘말리다가 보니 비판할 겨를이 없다. 군중 속에서 개인의 이성과 비판이 튀면 군중은 일시에 그를 왕따 시켜 그의 튀는 행동에 위협을 가한다. 이러한 와중에서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과 억측, 선동에 따라 판단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어 또 다른 행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넷째는 군중 전체는 나와 같은 아군이라는 감정적 동인이 작용한다. 따라서 개인은 군중과 일체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보니 군중의 희생양인 공통적 적군이 있어야 하고 그 적군에게 공격적 태도를 취하고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따라서 군중심리는 위의 원리에 따라서 격앙된 분위기와 흥분으로 발전하여 자기가 행동한 것이 최고의 선인 양 생각을 하여 불법을 망각하고 나아가서 폭동을 일으킨다. 다섯째는 피암시성이 상승작용을 한다. 이는 주어진 정보가 제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인데 피암시성이 확대되다보면 자기 최면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군중이 최면에 빠지면 배후 조종자는 선동으로 몰아가기가 쉽게 된다.
무비판성과 피암시성에 잘 노출된 대중은 지적수준이 떨어지는 면이 많고 반면 설득을 당하기 쉬우므로 선동가들은 그 단계를 맞추어 설득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비판성과 피암시성은 사이비종교 계열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이비종교에서 반복되는 박수를 치게 만드는 것도 피암시성의 확대를 통한 최면을 노리고 하는 것이며 울부짖게 만드는 것도 무비판성의 확대를 이루려는 기법이다. 군중심리는 선의로 사용할 때는 건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만 악의로 사용할 때는 혼돈으로 몰고 간다.
이러한 군중심리를 이용한 선동은 몰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종교나 조직에서는 개인이 튀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튀면 지도자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선동가의 의도대로 군중이나 조직을 이끌고 갈 수 없어 선동가는 갖은 사회심리 및 온갖 미디어를 사용하여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혜를 짠다. 이것도 건전한 방향이면 좋은 일이나 너무 많은 비용이 발생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 그 집단은 국가 또는 조직에 해를 끼치는 단체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어느 집단에 소속이 된다. 그것이 학교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친구집단이든...결국 사람의 정체성에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개인정체성´과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소속된 누구인가를 의미하는 ´사회정체성´ 이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불가분하게 집단에 소속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며, 더 나아가 집단을 통해 자신의 긍정적인 자존심을 확보하고자 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건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아주 작은 동질성이나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면 하나의 집단으로써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집단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특성이나 속성을 소유하지 못한 집단 외부의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집단 사람으로 분류하게 된다. 이렇게 내집단과 다른 집단에 대한 비교를 하게 되면 내가 속한 집단이 어떤 면에서든 외부 집단과 비교하게 되며 자기 집단의 우월성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려고 하게 되어 사회적 경쟁이 생긴다. 여기서 다른 집단 간에 충돌이 생기고 그 결과에 따라서는 퇴보하는 사회를 만들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적어도 건전한 국민이라면 나의 행위가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해악을 끼치지 않을 것인가를 지혜롭게 생각해 볼 때다. 이러한 냉철한 판단을 하자면 아무래도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잘 시켜야할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우리사회는 소영웅주의자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이창대 전시문화시스템 소장]
'사회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에크에 대한 오해 (0) | 2010.04.08 |
---|---|
공공재, 클럽재, 사유재, 가치재 (0) | 2010.04.08 |
플라톤의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에 대한 비판 (0) | 2010.04.08 |
점진적 간섭주의에 대한 잠재적 위험 요소 (0) | 2010.04.08 |
자격증주의 (0) | 2010.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