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기에, 우리는 모두 자신을 정당화하고 해롭거나 부도덕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 대다수는 수백만 명의 생사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지만, 우리가 저지른 과오의 결과가 사소하든 중대하든 "내가 틀렸다. 내가 끔직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실수를 무능력으로 치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는 과오의 결과가 중요할수록 실수를 고백하는 어려움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된다.
자기정당화를 추동하는 엔진, 즉 행위와 결정을 정당화할 필요성을 만드는 에너지는 레온 페스팅어(Leon Festinger) 교수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른 불유쾌한 감정이다.
인지부조화는 한 개인이 심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두 가지 인지(사고, 태도, 신념, 의견)를 가지고 있을 때 생겨나는 긴장상태를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두 개의 인지는 서로 상반될 때 부조화 한다. 인지부조화는 심리적 불편함을 유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감소시키려고 한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평소 자신의 신념과 상반되는 어리석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자아의 보존에 위협을 주는 심리적 긴장상태인 인지부조화에 빠진다.
부조화를 느끼는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상충하는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조리(absurdity)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알베르트 카뮈가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의 삶이 부조리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생을 보내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우리 인간은 옳게 되려는 동기보다 옳다고(그리고 지혜롭고, 예의바르고, 선량하다고) 믿으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잘못된 행동에 따르는 인지부조화의 결과 우리는 자신의 자아를 보존하기 위해 자기정당화라는 심리메커니즘을 발동시킨다. 즉 인간의 마음속에서 양립할 수 없는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 때 적절한 조건하에서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맞추어 믿음을 조정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를 직면하면 자신의 견해나 행동 방침을 바꾸기보다는 훨씬 더 완강하게 정당화한다. 논박의 여지가 없는 증거조차 자기정당화(self-justification)라는 심리적 갑옷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자기정당화는 거짓말이나 변명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연인, 부모, 고용주의 분노를 피하거나 고발당하거나 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또는 일자리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가공의 이야기를 지어낸다.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잘못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대중이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과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대단히 다르다. 대중을 설득할 때는 자신이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자신을 설득할 때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한다. 바로 그 때문에 자기정당화가 공공연한 거짓말보다 강력하고 위험하다.
자기정당화가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한 번쯤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사실 그것은 탁월한 해결책이었어." "난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난 그럴 자격이 있어." 라는 자기정당화 문구를 사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정당화에도 유익한 점과 해로운 점이 있다. 그 자체로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기정당화가 있기에 발 뻗고 편히 잘 수가 있다. 만약 자기정당화가 없다면 심한 번민에 시달릴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고 지나온 길을 후회하느라고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결정의 결과를 두고 괴로워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심코 하는 자기정당화는 유사(流砂)와 같이 우리를 더 깊은 불행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과오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보는 것마저 방해한다.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필요한 정보를 얻고 문제들을 명확히 평가하는 것을 방해한다. 범죄자로 하여금 자기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회피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대중에게 해로울 수 있는 습관적인 태도와 절차를 바꾸지 못하게 한다.
타인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일상적 상황에서는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자기정당화는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적인 상황이나 타인에게 위험이나 손해를 야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작동하는 자기정당화는 결국 자신과 주위에 커다란 해를 끼치며 최악의 경우 파국을 초래한다.
자기정당화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가파르고 거대한 피라미드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것과 같다. 그 시작은 미미하지만 변명이 변명을 부르는 걷잡을 수 없는 가속도가 붙게 되면 스스로는 멈추지 않고 주변에서 멈추기에도 힘들다. 그리고 한번 잘못된 방향으로 미끄러지면 그 결과는 정상적인 도착점과 너무나도 떨어져 있어 돌이킬 수가 없다. 이를 방지하려면 조기에 잘못된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거나 스스로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나쁜길에 접어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 적절한 한계에서 멈춘다. 이렇게 절제가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이 더 궁금하다. 그래야 이런 메커니즘을 강화하여 악화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으니.)
인지부조화 이론은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로서 정보를 논리적으로 처리한다는 자화자찬식 개념도 타파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새로운 정보가 신념과 일치하면 그것이 근거가 분명하고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늘 말한 거잖아!" 하지만 새 정보가 기존 신념과 상충할 때는 한쪽에 치우쳐 있거나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 무슨 헛소리야!"
조화에 대한 요구가 워낙 강하다 보니 부정할 수 없는 증거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기존의 신념을 유지하거나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증거를 비판, 왜곡, 기각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러한 심적 왜곡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신경과학자들은 편향된 사고가 뇌의 정보처리 방식 그 자체에 내장되어 있음을 입증했다. 예를 들어 드루 웨스턴(Drew Western) 팀은 부조화 정보나 조화 정보를 처리하고 있는 피험자들의 뇌를 핵자기 공명 장치(MRI)로 관찰하는 연구를 수행했다(조지 부시나 존 케리의 행동에 대한 피험자들의 반응).
피험자들이 부조화 정보에 접했을 때는 뇌의 추론 영역이 거의 정지되어 있고, 조화가 회복되었을 때는 뇌의 정서 회로가 환하게 밝아졌다. 이들 메커니즘은 마음을 일단 결정하고 나면 바꾸기가 어렵다는 관찰을 뒷받침하는 신경학적 근거을 제공한다.
실수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누구나 사리 분별 능력은 가지고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은폐할 것인지, 자백할 것인지를 선택할 능력은 있다. 그 선택은 다음 행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항상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수한 사실부터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정당화라는 '세이렌 요정의 노랫소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자신을 밧줄로 묶은 것과 같은 심리학적 방어도구는 무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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