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당신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

팔락 2010. 12. 21. 17:42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면, 그 첫째는 생존일 것이고 두 번째는 자유가 될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여 문화적 삶을 시작한 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자유를 쟁취하고 확대하기 위한 투쟁은 지속되어 왔다. 자유를 위한 위대한 여정은 많은 굴곡과 일시적인 퇴보도 있었지만 결국은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법치 제도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적은 전체주의주의자였으며 여기에는 극좌와 극우 모두가 포함된다. 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모두 자유와 평화를 위한 지적인 토대를 쌓았으며 전쟁을 반대하였으나 유일하게 찬성한 전쟁은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시작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은 페리클레스가 약 2400년 전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 전몰자를 위한 추도회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로 이 연설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흥분으로 인해 사흘간 잠을 설쳤다고 전해진다.

 

~ 우리의 정치체제는 다른 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와 경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모방하지 않고 하나의 표본이 되고자 한다. 우리의 행정은 소수 대신에 다수를 옹호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라 불리는 이유이다.

 

  법률은 개인들의 사적인 분쟁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정의를 행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탁월한 자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는다. 어떤 시민이 뛰어나면, 그는 다른 사람에 앞서서 국가에 봉사하도록 요청된다. 그러나 그것은 특권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장점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가난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는 일상적인 생활에까지 확장된다.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지 않으며, 우리의 이웃이 그들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가 무법적인 상태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행정장관들과 법률을 존중하도록 배우며, 피해 입은 자에 대한 보호를 잊지 않도록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역시, 그 강제력이 옳다고 느끼는 보편적 감정에서만 존재하는, 불문율을 준수할 것도 배운다. 우리 국가는 세계에 개방되어 있다. 우리는 결코 외국인을 추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렇지만 언제나 위험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되 환상에 빠지지 않으며, 우리의 지성을 향상시키고자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의지를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자신의 가난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불명예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을 면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은 불명예로 간주한다.

 

 아테네 시민은 개인적인 사업에 몰두할 때에도 공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에 관심이 없는 자들을 무해한 인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인물로 생각한다. 우리는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

 

 우리는 논의를 정치적 행위에 대한 장애물로 보지 않고, 현명한 행위를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행위로 본다. 우리는 행복은 자유의 열매이고, 자유는 용기의 열매라 믿으며, 전쟁의 위협에 위축되지 않는다. ~ (후략)

 

 

과거나 현재나, 자유와 정의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관념과 열망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 연설문은 잘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힘없는 나라에 평화는 없다. 국가 간에 평화는 힘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에 기록된 모든 평화는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힘을 비축해서 얻은 것이다. 적의 전력(戰力)과 최소한 대등한 전력을 가질 때 전쟁을 억지(抑止)하고 평화는 유지된다. 이 전력이란 것은 단순히 병력과 무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도발에 언제든 응징을 가하는 힘과 이를 실행하려는 단결된 의지가 바로 전력의 핵심이다.

 

평화는 결코 말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은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에서 ´BC1500년부터 1860년까지 영구적인 평화의 보장을 전제로 하는 평화조약이 약 8천 건이나 체결됐으나 그 효력이 지속되기는 평균 2년 정도에 불과했다´고 써, 평화의 약속들이 얼마나 허구에 찬 미봉책인가를 단적으로 설명했다. 회맹의 의식을 치르든 조약을 맺든 그 어떤 형식의 약속도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낱 휴지에 지나지 않는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 총통과 평화적 협상을 타결시킨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지만,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며 협상 타결을 반대한 처칠은 지금까지도 역사의 선지자로서 존경받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와의 평화적 협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평화도 잠시 유보된 가짜 평화라는 것은 역사와 우리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도 명확하다. 적의 위협에 노예처럼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단결된 힘으로 결연히 맞서서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만이 남아있다.

 

 믿을 것은 무엇인가?  김정일의 자비심인가, 아니면 우리의 국방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