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쏠림 현상(Group polarization,극화라고도 함)
집단 쏠림 현상은 아직도 모호한 부분이 많고, 그런 현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사회학자들은 토론을 통해 사람들의 의견이 잘 조율되기보다는 오히려 극단적인 결과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위험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위험기피형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지나치게 안전제일주의만 고집하지만 위험추구형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정반대로 훨씬 더 위험한 쪽을 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들끼리 모이면 훨씬 더 비관적인 이야기들만 나오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극화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시카고 대학 교수인 캐스 선스테인은 <왜 반대파가 필요한가>라는 저서에서 이런 극화 현상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토론을 통해 양측은 본래 입장보다 오히려 더 극단적인 주장을 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한 가지 이유를 든다면 사람들이 사회적 비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히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차원을 넘어(물론 항상 비교하고 살지만) 비교를 통해 소속 집단에서 자신이 처한 상대적인 위치를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의미이다. 달리 말해 처음에 집단의 중간에 서 있던 사람이 집단이(예를 들어 오른쪽으로) 옮겨가면 중간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그 쪽으로 따라 옮겨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우측으로 옮기면 당연히 그 집단의 평균도 그만큼 우측으로 옮겨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쏠림 현상이 단지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려는 사람들 외에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자기 생각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은 소속된 집단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게 마련이다. 여기까지는 논의의 일부분으로 봐줄 수 있으니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집단 구성원 다수가 이미 한 쪽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면 그 입장을 지지하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아직 입장이 불분명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꾸 그런 말만 듣다 보니 덩달아 그 방향으로 휩쓸려갈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집단 내에서 극단적인 위치를 고수하려다 보니 극단적인 주장을 더 고집하기 십상이다.
이런 현상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순서가 토론 자체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토론 초반부에 한 말이 대개 토론의 틀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 정보의 연쇄파급효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단 틀이 세워지고 나면 반대파가 그 틀 자체를 바꾸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제일 먼저 발언한 사람이 논의하는 주제를 잘 알고 있다면 그래도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특히 분명한 정답이 없는 문제일 경우) 잘 모르는 사람이 나서 토론이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소집단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될 때가 많다. 어떤 아이디어가 정말 좋아 보여도 그 아이디어가 전체 집단에 채택되려면 힘 있는 사람이 지지해 주어야 한다. 논의가 진행될수록 다수파의 입장이 더 강화되는 현상도 생겨난다. 시작할 때부터 그 쪽에 힘 있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시장이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특정인이 힘이 있느냐가 덜 중요하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집단에서는 아이디어가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그 아이디어를 강력하게 지지해 줄 목소리가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지지 세력을 지혜나 통찰력이 아닌, 서열이나 말 많은 사람 순으로 선택하게 된다면 그 집단이 제대로 판단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설마 말 많은 사람이 영향력이 있겠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소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영향력 잇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조직 행동 연구 결과를 보면 항상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 주위에 사람들이 더 모여든다. 결국 집단에서 자꾸 나서는 사람들이 토론이 진행됨에 따라 중심인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해당 사안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을 때만 발언한다면 이 또한 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을 많이 하면 그 중에 뭔가 도움 될 만한 말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식과 많은 말 사이에는 뚜렷한 연관관계가 없다. 극단주의자들은 남들과 타협하기보다는 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자기 의견이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때문에 토론 결과 집단 전체가 중도적인 입장에서 벗어나게 마련이다.
물론 한 극단이 진실일 때도 있다. 처음 발언하거나 말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 가장 정보가 많거나 분석력이 뛰어난 경우라면 쏠림 현상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은 현실에서 희망 사항일 뿐이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적 자본과 반향실 효과 (0) | 2011.01.20 |
---|---|
현실과 언어를 구분할 능력이 없는 뇌 (0) | 2011.01.20 |
실패하는 소집단의 의사 결정 (0) | 2011.01.10 |
동조화 압력의 폐단, 솔로몬 애쉬의 실험 (0) | 2011.01.07 |
집단사고의 덫 (0) | 2011.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