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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주의가 흥행에 성공하는 이유

팔락 2010. 10. 12. 12:52

 

 비관주의는 언제나 흥행 실적이 좋았다. 비관주의자는 그레그 이스터브룩이 ``삶이 좋아진다는 믿음에 대한 집단적 거부``라고 부른 것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제보다 더 오래 살고,결혼을 더 오래 유지하며, 여행을 더 많이 할 거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인의 약 19 %는 자신들의 소득이 상위 1%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이렇게 개인으로서는 낙관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대해서는 비관한다는 사실이 각종 조사에서 일관성 있게 드러나고 있다. 데인 스탱글러는 이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부담스럽지 않은 형태의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이는 인간에게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과도 들어맞는다. 사람들이 일정액의 돈을 잃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정도는 같은 액수를 따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보다 훨씬 크다. 이는 수많은 문헌이 확인해주는 사실이다.

 

 그리고 비관 유전자는 낙관 유전자보다 문자 그대로 더 흔할지도 모른다. 세로토닌 전달 유전자의 긴 쪽 버전을 둘 다 가진(동형접합) 사람은 약 20%밖에 안된다. 이 유전자는 사람들에게 밝은 쪽을 보는 유전적 성향을 부여하는 것 같다. (위험을 감수할 용의는 낙관주의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또한 부분적으로 유전성이 있다. DRD4 유전자의 7회 반복 버전은 남성이 금융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의 20%를 설명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이 이민 출신인 나라에서 더 흔하게 발견된다.) 한 국가에서 국민이 점점 더 고령화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점점 더 새것을 혐오하고 비관적이 된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비관주의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 분명히 그렇다. 1990년대 초반 잠깐 공포를 일으켰던 오존층 문제를 보자. 인류는 염화불화탄소를 금지함으로써 자신과 스스로의 환경에 은혜를 베풀었다. 극지방의 오존층을 뚫고 추가로 들어오는 자외선의 양은 적도 지방 사람들이 평소 쬐는 양의 5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더라도 말이다.

 

 비관주의자들의 경고가 지나치게 무시당한 사례도 많다. 히틀러, 마오쩌뚱, 알카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은 사람은 지나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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