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중단의 형법적 정당화 요건·구조 마련하자
▲ 이백휴(의협 법제팀원 한양대 법학박사·형사법)
지난해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과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이는 최근 생명윤리와 관련하여 가장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로 그동안 생명연장을 위한 의사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다.
과거에는 사망할 수밖에 없었던 환자가 의료적 도움을 통해 생명을 지속할 수 있게 됐지만 정신적·육체적 고통까지 함께 연장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시키는 부작용도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의료적 수단을 동원하여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의사와 환자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의료윤리·종교·언론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나, 치료 여부·수단·방법 등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의사나 환자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치료중단의 허용 가능성·대상 환자·범위·요건·구체적 절차 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법학계의 다수 입장은 독일이나 일본 등의 논의를 수용하여 소극적·간접적 안락사는 허용하되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된다는 것이다.
법학계 다수입장은 소극적 안락사 허용
의료계에서는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대한병원협회가 공동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2009년 10월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였다. 보건복지부도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여 2010년 7월 14일 '연명치료중단 제도화 관련 논의결과'를 발표하였다.
한편, 국회에는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안'(2008년 12월 9일 김충환 의원 대표발의), '존엄사법안'(2009년 2월 5일 신상진 의원 대표발의),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2009년 6월 22일 김세연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노력에도 여전히 행위 주체인 의사의 법적 불안 상태를 해소하는데 한계가 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환자측에서 의사에게 연명치료를 계속 또는 중단하도록 요구할 경우 담당 의사는 어떻게 해야할 지 결정하기 쉽지 않다.
가령 의학적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경우 담당 의사가 치료를 계속한다면 상해죄 또는 강요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반면, 치료를 중단하여 환자가 사망한다면 작위·부작위에 의한 촉탁살인죄 등이 성립할 수 있다.
회생가능 환자 치료중단땐 촉탁살인죄 성립 가능
형법상 가장 중요한 보호법익인 생명 침해 행위에 대한 허용 구조 설정이 어렵고, 자칫 형사처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처벌의 대상을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형법적 논의가 부족했다.
따라서 언제든 이 문제가 쟁점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공론화하되, 다만 행위의 특성상 형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요건 및 구조 설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형법적 평가 대상인 행위에 대해 '연명치료중단(살인)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동안 사용된 안락사·존엄사·자연사 등은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한편 넓은 의미에서는 연명치료중단행위와 환자의 자살에 조력한 행위로 인하여 환자가 사망한 경우를 포함한다.
이 경우 '실행행위의 주체'에 따라 형법상 살인죄(제250조 제1항), 촉탁살인죄(제252조 제1항), 자살방조죄(제252조 제2항)로 구분할 수 있으며, 살인죄와 촉탁살인죄는 '환자 의사 유무'에 따라 구분된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적용법규에 작위·부작위범이 성립할 수 있어 총 6가지 형태를 선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의사의 연명치료중단행위는 일반적인 생명침해 행위와 다른 성질이 있다는 점에서 형법상 허용될 수 있다. 다만 6가지 형태는 행위주체, 환자 의사 유무, 작위·부작위를 제외하고는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 허용요건을 설정함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요건으로 시행주체는 의사에 한정되며, 의료행위의 정당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객관적 요건으로 환자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하여야 하고, 이 시점에서의 치료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경우이어야 한다. 주관적 요건으로 연명치료중단에 대한 환자의 주관적 의사가 존재해야 한다.
아울러 이는 인간의 생명의 종결에 관한 사항으로 적어도 형법적 평가에 있어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므로 육체적·정신적 고통 등은 고려대상에서 제외한다.
이같은 허용요건을 모두 충족한 경우 또는 일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형법상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리 구성이 필요하다. 크게 절차적 정당화 논증과 사회상규에 의한 정당화 논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절차적 정당화 논증 문제는 인간 생명의 종결에 관한 것으로 다양한 가치관의 대립이 있는 한계영역인 만큼 구체적인 법률과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의사의 법적 불안 상태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특히 정당화 요건과 구체적인 절차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구체적 법률절차 마련해 법적 불안상태 해소해야
사회상규에 의한 정당화 논증 문제는 절차가 제정되지 않은 경우, 설령 제도가 마련되었더라도 규정상 해석의 여지가 있거나 관련 입법에서 제외된 사항에 대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즉 환자의 객관적인 상태를 기준으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형법 제20조에 의하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라 함은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대법원 2009년 12월 24일 선고, 2007도6243 판결).
구체적으로 환자가 '회생 불가능한 사망단계로 진입'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정당화 논증 구조가 달라진다. 먼저 환자가 '회생 불가능한 사망단계로 진입'하여 치료를 중단하면 환자가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 명백한 경우 의사는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설령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이때 의사의 행위를 환자에 대한 생명 침해 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 이때 의사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 행위로 정당화될 수 있다.
반면 환자가 회생가능하다면 의사는 치료를 계속하여야 하며, 치료를 중단할 경우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가 성립할 수 있다.
환자가 '회생 불가능한 사망단계로 진입했는지 불확실'한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경우 환자의 진지한 의사(자기결정권)를 고려하여 의사의 연명치료중단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 이때 환자의 의사는 명시적 의사, 추정적 의사 순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다수 입장은 환자 가족 등에 의한 대리판단을 인정하나, 이를 인정할 경우 자기결정권을 형해화(形骸化) 할 수 있으며 생명의 종결에 관한 의사는 그 성격상 일신전속적이라는 점에서 연명치료중단 여부에 대한 대리판단은 인정될 수 없다.
만약 환자가 승낙능력이 없거나 추정적 의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여 연명치료중단(제거·보류) 또는 계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참고로 의사의 연명치료중단행위에 대한 형법적 평가에 있어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환자의 자기결정권' 중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평가 구조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이 가치갈등이 첨예한 영역에서는 전문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환자의 의사에 맡기는 것에 비하여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전문적 판단을 위한 기준 설정을 위한 의사의 노력과 그에 따른 책임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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