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민주주의의 세계적 뿌리 3

팔락 2010. 10. 3. 13:19

 

 공적 토론은 세계 곳곳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심지어 정복왕 알렉산드로스조차도 기원전 325년경 인도의 북서부 지방을 순회하면서 공적 비판의 좋은 본본기를 접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한 무리의 자이나교 철학자들에게 왜 위대한 정복자인 자신에게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지 물었을 때(알렉산드로스는 이 인도 철학자들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을 보고 분명히 실망했다), 그에게 다음과 같은 설득력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알렉산드로스왕이여, 모든 인간은 지금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땅만큼만 차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당신도 우리와 별 차이 없는 한낱 인간일 따름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은 좋지 않은 일에 매달려 항상 바쁘다는 점, 그리고 고향을 떠나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폐를 끼친다는 점이지요! --- 당신은 머지않아 죽을 것이며 결국 당신의 육신을 묻는 데 필요한 땅만큼만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중동의 역사와 무슬림의 역사에도 공적 토론 및 대화를 통한 정치 참여를 설명해 주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있다. 카이로, 바그다드,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그리고 이란, 인도, 또는 스페인에까지 형성된 무슬림 왕국에는(10세기 코르도바의 칼리프 압두르라흐만3세, 16세기 인도의 아크바르 황제등) 공적 토론을 옹호하는 이들이 많았다.

 

 서구는 민주주의 사상에 대해 어떠한 소유권도 주장하지 못한다. 근대의 제도적 형태의 민주주의는 어디에서나 비교적 새롭기는 하지만, 공공의 참여와 공공 추론의 형식 면에서의 민주주의 역사는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알렉시 드 토크빌이 1835년 민주주의론에 대한 그의 고전적 저서에서 주목했듯이, 그가 직접 미국에서 태동하는 것을 관찰했던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은 하나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것``으로 보일 수 있어도, 더 넓은 관점에서 볼 때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항구적인 경향``의 일부로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비록 토크빌은 유럽의 과거에 한정해 역사적 사례를 들었지만(예컨데, 그는 평민을 ``700년 전 프랑스``의 성직자 지위로 끌어올리도록 허용함으로써 민주화에 대한 강력한 공헌이 이루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의 일반적 주장은 매우 광범위한 관련성을 가진다.

 

 넬슨 만델라는 자서전 <자유를 위한 머나먼 여정Long Walk to Freedom>에서 어린 시절 아프리카의 자기 고향에서 열렸던 마을 회의에서 민주적 성격의 진행 방식을 본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기술한다.

 

 말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말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민주주의였다. 발언자 가운데는 중요도에 따른 서열이 있기는 했지만, 족장과 부족민, 전사와 의사, 가게 주인과 농부, 지주와 노동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발언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만델라의 탐구는 서구의 ``부과``에서 기인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히 그의 아프리카 고향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유럽인들``에게 민주주의를 ``부과하기``위해 투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이제는 추억이 되겠지만, ``유럽인들``은 아파르헤이트 기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통치자들이 스스로를 칭할 때 사용한 말이었다). 만델라의 궁극적 승리는 인간성의 승리이지 특정 유럽 사상의 승리는 아니었다.

 

-- 아마르티아 센의 정체성과 폭력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