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간의 경험을 기초로 기나긴 과거를 다시 정의하는 허울 뿐인 역사와는 달리, 고대 그리스에 특히 초점을 맞추는, 역사적으로 더욱 야심 찬 추론 방식이 있다.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서구적인`` 것이라는 믿음은 일찍이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 투표와 선거가 시행되었다는 사실과 자주 연결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선구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실인지만, 이로부터 민주주의가 ``서구적(또는 유럽적)`` 본성을 가졌다고 곧바로 비약하는 것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분명한 이유 때문에 혼란스럽고 당혹스럽다.
첫째, 주로 인종적 용어로 문명을 정의하는 분류의 자의성이다. 문명 범주를 바라보는 이런 방식에서, 가령 그리스 전통의 적임 계승자로 고트족과 서고트족의 후손을 고려할 때는(``그들은 모두 유럽인이다``라는 말들을 한다)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지만, 고대 그리스인들과 그리스 동.서쪽에 위치한 다른 고대 문명의 지적 연결 고리에 주목하고자 할 때는 커다란 거부감이 생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동고트족에게 말을 걸 때보다는) 고대 이란인이나 인도인, 이집트인 들에 대해 자발적으로 더 큰 관심을 보였음에도 말이다.
둘째 쟁점은 초기 그리스의 경험을 추적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아테네인들이 투표를 처음으로 시행한 개척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후 수 세기 동안 여러 지방의 정부들이 그와 같은 길을 따랐다. 선거에 의한 통치 방식에서 그리스가 얻은 경험이 그리스와 로마의 서쪽에 있는 나라들, 말하자면 오늘날의 프랑스나 독일, 영국에 해당하는 나라들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이후 수 세기 동안 그 당시 아시아(이란과 박트리아 Bactria, 인도)의 몇몇 도시에서는 시정市政에 민주주의의 요소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이란 남서부의 수사Susa (또는 슈산 Shushan)에서는 몇 세기 동안 의회와 민회가 선출되었고, 의회가 추천하고 민회에서 선출한 행정관이 있었다.
셋째, 민주주의는 선거와 투표뿐 아니라 공공의 심의public deliberation와 공공의 추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오래된 표현으로 나타내면 ``토론에 의한 통치``다. 공공의 추론이 고대 그리스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몇몇 다른 고대 문명에서도 이루어졌으며 때로는 장관을 이룰 정도로 멋들어지게 열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상이한 관점으로 인한 논쟁을 해결하려는 특정 목적으로 열린 초기의 공개 대회합들은 인도의 이른바 불교 대회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때 서로 다른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차이를 해소하고자 했다. 앞서 언급한 아소카는 기원전 3세기, 당시 인도의 수도인 파탈리푸트라(지금의 파트나)에서 세 번째이자 가장 대규모였던 불교 대회를 개최했으며, 공적 토론의 규칙을 최초로 체계화하고 이것을 경전으로 편찬해 보급하려고 했다(이는 19세기 ``로버트의 의사 진행 규칙Robert`s Rules of Order``의 초기 버전으로 볼 수 있다).
공적 토론의 전통은 세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역사적 선례를 찾아보자면, 7세기 초 불교 신자였던 일본의 쇼토쿠 태자는 자신의 어머니 스이코 일왕을 대리하는 섭정으로서 604년에 공포한 <17조 헌법>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중대한 문제는 한 사람이 단독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수의 토론이 있어야 한다.`` 이는 공교롭게도 13세기에 승인된 마그나 카르타보다 600년이나 빠르다. 일본의 17조 헌법은 다수의 추론이 왜 중요한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성부터 내지 말라. 모든 사람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각 마음은 그 자체의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옳은 것이 우리에게 그른 것일 수 잇으며, 우리에게 옳은 것이 그들에게 그른 것일 수 있다.`` 일부 논평가들이 <17조 헌법>에서 일본의 ``민주주의를 향한 점진적 발전의 첫걸음``을 본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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