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음모설(conspiracy theory of society)의 허구 >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이 수행해야 할 것은, 그 현상이 일어남에 관심을 가지고(때로는 처음으로 밝혀져야 할 숨은 관심이기도 하다) 그것이 일어나도록 계획하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나 집단을 발견하는 작업이라는 이론이다. 그것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들 - 특히 전쟁, 실업, 빈곤, 테러 그리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여러가지 부족사태들 - 이 어떤 강력한 개인과 집단의 직접적 계획의 결과라는 그릇된 이론이다.
이 이론은 널리 주장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주의보다도 오래된 주장이다(역사주의는 이러한 음모설로부터 파생된 하나의 이론이다). 그 현대적 형태는 현대의 역사주의와 자연법에 대한 어떤 현대적 태도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미신의 세속화의 하나의 전형적 결과이다. 트로이 전쟁의 역사를 설명하는 호머의 신들의 음모에 대한 믿음은 이제 사라졌다. 신들은 이제 저버림을 받았다. 그 신들의 위치는 독점가, 자본주의자, 제국주의자들과 같은 강력한 사람이나 집단에 의해 채워진다. 그런데 우리가 받는 모든 고통스러운 악들은 바로 이 음흉한 압력집단의 악의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음모가 결코 행해지지 않는다고 내가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음모들은 사회현상의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음모설을 믿는 사람이 권력을 쥐었을 때 그것은 더욱 중요성을 띠게 된다. 지상에 천국을 만드는 법을 안다고 참으로 믿는 사람은 음모설을 채택하여 존재하지 않는 음모자에 대항하는 반음모를 꾸미기가 쉽다. 그들이 천국을 만드는 데 실패한 데 대한 유일한 설명은 지옥에 이권을 가진 악마의 악의 때문이라고 하면 된다. 음모들이 행해진다는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같은 음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모설을 반증하는 명백한 사실은 이 음모들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음모자들이 그들의 음모를 성취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왜 그런가? 성취는 야망과 왜 그렇게 다른가? 그것이 음모이든 아니든 사회생활의 실상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도와 전통이라는 질기지만 때로는 부서지기 쉬운 틀 안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적인 역작용 이외에도 이 틀 안에서는 예측되지 않은 많은 사태와 예견할 수조차 없는 사태들을 만들어낸다.
인간 사회의 여러 사태들은 인간의 의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집을 사기를 절박하게 원하는 경우 우리가 그가 집값이 오를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집을 사려고 시장에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집의 시장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를 팔려는 사람에게도 할 수 있다. 다른 분야에서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생명보험을 들려고 결정하는 경우에, 그의 의도 속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험주식에 투자를 하도록 자극하려는 생각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그런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결과들이 반드시 우리가 의도한 결과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사회음모설이 참일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회음모설은 처음에는 전혀 의도되지 않은 결과들을 그 결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의도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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