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그들이 우리를 중독시키는 이유
요즘 흑색선전이 정말 대단합니다. 모든 대선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저래도 되나? 완전히 막장이구먼!”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대방들을 극렬하게 비방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흑색선전이 다른 어떤 논리나 비전 제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볼 때나 생각할 때, 인간의 뇌는 맛있는 것을 볼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됩니다.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 관련된 부분이죠. 그런데 그 후보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을 계속 보여주면 뇌의 활동은 달라집니다.
흑색선전에 계속 노출되면, 아직도 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도 그 후보를 언급할 때 긍정적인 감정과 관련된 뇌의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게 됩니다. 논리는 아직 그대로인데 감정은 변한 것이죠.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그 후보를 지지하지 않게 됩니다. 논리는 감정의 지배하에 있으니까요.
정치적 판단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 인간의 정치적인 판단이 얼마나 논리적, 혹은 합리적일지에 대해서 의혹은 있지만 말입니다. 뇌 과학계에서 인간의 정치적 판단의 합리성을 알아보려는 실험들은, 합리성의 여부보다는 정치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해내는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일관적인 정치적 판단을 잘 못합니다. 익숙하지 않고, 개인의 가치관과 성향이 기존 정파들의 신념과 일관적으로 잘 일치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나 정치에 중독된 사람들은 매우 일관된 정치적 판단을 합니다. 자신이 속한 정파의 신념에 따라 일관된 판단을 합니다. 합리적이지는 않을 수 있어도 일관적이기는 합니다.
인간의 뇌에는 ‘기본상태망default mode network’이라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 영역은 쉴 때나 별생각 없이도 할 수 있는 매우 익숙한 활동을 할 때 활성화되고, 집중해서 과제를 수행할 때에는 비활성화되죠.
보통 사람들의 뇌는 정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기본상태망이 정지되고,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그런데 정치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의 기본상태망은 정치적 질문을 받았을 때 꺼지지 않습니다. 늘 정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정치에 대한 생각이 기본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죠. 저는 잘 모르는데, 그 정치와 권력의 맛이 참 대단한가 봅니다. 그러니 후보들의 흑색선전은 저처럼 정치에 대해 생각할 때 기본상태망을 끄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한 노력입니다. 속 깊은 배려에 감사해야 하겠죠?
다른 것에 중독된 사람들도 그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때 기본상태망이 꺼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기본상태망은 가족이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꺼지지 않죠. 사랑과 대인 관계에 중독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겐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니까요. 몇 개월 동안 지속된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여전히 정치보다는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매우 유익한 중독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런 존재이니까요.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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