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의료자본 진입이 독(毒) 될걸 의사들 알지 못했다”
서울대 조병희 교수, 의료정책연구소 토론회서 지적…"미국 의사사회도 비슷한 상황"
"우리나라 의료는 과잉 성장한 4차 병원들에 의해 시장이 독과점 되어 있다. 자양분이 위쪽에만 몰려 있어 1차 의료는 죽는 구조이다"
지난 16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의협 발전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사회학과 조병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조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미국의사회(AMA)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를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최근 들어 의사들의 모습, 특히 개원의가 위축돼 보이는데 수가가 낮아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수가를 올리면 강심제를 맞은 것 같은 효과는 있겠지만 1~2년 후에는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며 "결국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의료자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런 세력이 의료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우리나라 의사 사회보다 훨씬 강력한 조직과 지위를 가진 미국 의사들도 자본의 힘으로 인해 급격한 지위하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미국도 자본이 의료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의사들의 지위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면서 "실제 미국의사회가 1만3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84%가 '의사의 지위 하락'을 인정했고 75%는 의사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 이유로 '너무 규제가 많다. 페이퍼웍이 많아졌다. 임상의 자율성이 사라졌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악화했다'는 점을 꼽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미국 의사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다"며 "매우 잘해서 의학 수준을 높였고 이것이 부가가치를 크게 만들어냈고, 자본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자본이 진입하고 있지만 의사사회가 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 교수는 "한국의 경우 의사의 힘이 강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는데 의료자본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그 영향력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대표적인 사례가 19년 전 삼성의료원의 개원이다. 삼성의료원이 들어올 때 의사들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그 독이 퍼져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도 그렇게 됐다. 대학이 수천병상 규모의 초대형 병원을 갖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의협이 현 정부의 정책에 반발해 맞서고 있는 것도 결국 자본의 힘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현재의 집권세력 정책에 대해 국민적 지지가 크지 않은 상황이고, 의사들이 노조와 한편에 앉아서 토론하는 보기 드문 모습까지 보여주는데도 정부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결국 더 큰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고, 쉽게 말하면 자본이다. 자본의 힘이 세지면 의사들도 거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의사들을 통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의사들은 어떻게 영향력을 갖게 됐나
16일 의협 발전모색 2차 토론회서 권위 확보 전략 소개
서울대 조병희 교수가 지난 16일 의협회관서 열린 ‘의사협회 발전모색을 위한 연속 토론 2차 토론회’에서 미국의사들이 영향력을 강화해 온 과정을 설명했다.
이날 ‘미국의사회(AMA)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를 주제로 초청강연에 나선 조병희 교수는 “18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의사의 전문성과 시장독점의 필요성이 먹혀들지 않았다.”라며, “시장에는 의사 외에도 다양한 치료자 그룹이 존재했다.”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의사라고 해서 특별히 나을 게 없었고, 일례로 유수한 집안에서는 자식들이 의학공부를 한다고 하면 결사적으로 말릴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1890년대가 되면 그러한 의사의 지위나 면허독점 주장에 대해 사회적 반발이 완전히 사라졌다.”라며, “20~30년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라고 발언했다.
조 교수는 미국 의사들이 영향력을 높일 수 있던 배경으로 ▲교육개혁 ▲사회적 접근 ▲배제와 포용 ▲조직지배 ▲사회적 명분 등을 소개했다.
조 교수는 “미국의사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 전략은 교육 개혁을 통한 치료 능력 향상이었다.”라고 말했다.
18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의사들의 정기교육과정이 일 년이었고, 일 년만 학원식으로 공부하면 의사자격을 줬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그러다가 발전할 수 있는 의대와 그렇지 못한 의대를 구분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의대를 시장에서 축출하고, 일부 의대만 남겨서 집중 교육하는 방식으로 의학수준을 높였다.”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가 제시한 미국의사들의 두 번째 전략은 사회적 접근방식이었다. 조 교수는 “그들은 국가의 개입 이전에 의사와 환자 관계를 구축했다.”라며, “의사의 소득이 높지 않던 시기에 전문화와 자율성을 주장한 게 통했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미국의사들은 배제와 포용을 적절히 활용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독점 면허제도의 확립을 위해 정치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라며, “동종요법사 등 경쟁자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윤리규범을 제정해 동료를 규제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교수는 “미국의사들은 조직지배 전략으로 내부경쟁을 배제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끼리 경쟁하지 않게 하려고 동일체 의식과 직업가치를 체득시키고, 업무분업화를 통해 협력체계를 구축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조 교수는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의학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가 투자하고 용인해 줘야 한다는 명분론을 주장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의사들도 사회적 영향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권위를 구축했지만 정부의 개입과 자본에 의한 의료시장의 재편, 정보기술 및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대중의 의학지식에 대한 접근도 향상 등으로 다시 권위와 영향력이 하락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의사들이 너무 잘해서 의학의 수준을 높였고, 이것이 부가가치를 크게 만들어 내면서 자본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라며, “의료자본이 급속히 들어오면서 의사의 지위를 낮추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어진 토론에서는 의협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원중 기획이사는 “현재 의사협회의 문제는 회원을 확보하는 일이다.”라며, “집행부는 따라오지 않는 회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한의학회 조경희 보건교육이사는 “의사들은 의원에서 시작해 병원과 대학병원으로 꾸준히 외형을 키웠으면서도 수가가 낮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느냐.”라고 묻고,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연구실장은 “강연자가 미국의사회의 영향력 확대를 롤 모델로 주신 것 같은데 환경과 문화, 역사가 달라서 실현해 가는 것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라며, “무너진 의료전달체계의 재설계와 의사협회와 병원협회의 협력방안 모색 등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 의사협회 대의원회 김영완 대변인은 의사협회비 의무화와 조직과 구성에 대한 과감한 개편을 주문했고, 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 안덕선 위원은 미국 성형외과의 경우 성형외과의사회는 학술대회, 성형외과학회는 시험과 전문 자격증의 유지를 담당한다며 의사단체가 더 전문화되고 직능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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