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법의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헌법소원
재판관 한대현, 재판관 권성의 반대의견(소수의견)
가.헌법은 한 사회가 지향하는 문화의 틀을 법률적으로 구성하여 놓은 것이므로 어떤 제도가 이 틀에 맞지 않는다면 이 제도는 위헌이 된다고 할 것인데, 다수의견이 지칭하는 소위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당연 요양기관제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는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문화의 틀에 어긋나서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은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이로써 삶의 질이 계속 향상되는 문화사회를 지향한다. 의료는 인류문화의 중요한 한 요소로서 학문과 기술의 결합체인데 학문과 기술은 그 속성상 자고로 통제와 답습 속에서는 그 생명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가 의료에 대한 국가의 획일적 통제시스템임을 부정할 수 없는 이상, 그리고 의료가 학문과 기술의 결합체임을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이상, 이 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를 제공한다는 훌륭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뒤에 보는 바와 같이 그 채택한 바의 수단이 자유와 창의에 역행하고 이로써 문화의 발전에 장애가 되어 위헌의 판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나.다수의견은, 직업의 자유를 직업선택의 자유와 직업수행의 자유로 구분한 뒤 직업수행의 자유에 대하여는 공익을 위하여 직업선택의 자유보다 더 광범위한 제한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의사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사회보험이라는 공익을 위하여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정도에 불과하여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직업선택의 자유와 직업수행의 자유는 따로 존재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이 분석 각도의 차이에 따라 별개로 이름을 얻은 것이어서 원래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따라서 직업수행의 자유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한되는 방식과 정도에 따라서는 그 직업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하여 그 직업의 본질을 해치는 경우가 있게 되고 이렇게 되면 그 제한은 위헌이 되는 것이다. 다수의견이 강제지정제의 단점에 대한 설명에서 이를 일부 인정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의사가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때문에 법이 정한 일정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치료를 하게 마련이고 자기의 배우고 연구하고 익힌 바에 따라 소신껏 치료를 하기 어렵다면 의사라는 직업의 보람과 본질은 결정적으로 훼손된다.
다.통제를 하는 국가기관이 신과 같은 무오류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자유와 창의의 위축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터인데 항차 실제로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구가 국가의 일상적 관료라고 한다면 문제는 자못 심각하게 된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가 관료제도와 결합하게 되면 관료 제도의 속성상 그 관리기구는 점점 방대하여지고 그 권한은 점점 더 커지며 그 비용은 날로 늘어나는 폐단을 일으키기 쉬워서 양질의 의료를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데 기여한다는 본래의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의료의 측면에서 보면 부수적이라고 할 인사, 조직, 처우, 노사 등의 문제 처리에 영일이 없게 된다.
한가지만 예를 들어본다면 다수의견이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의 의료보험수가제도는, 의료행위의 내용과 양에 따라 진료비가 정하여지는 진료행위별 수가제를 바탕으로 하여 진료행위를 약 3,500여 가지로 세분하여 각각의 금액을 합산하여 진료비를 결정하고 있는데, 진료행위별 수가제라는 것은, 진료에 사용된 약값 또는 재료비를 별도로 산정하고 의료인이 제공한 진료행위 하나하나마다 일정한 값을 정하여 의료비를 지급토록 하는 제도이므로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수가는 요양급여에 소요되는 시간·노력 등 업무량, 인력·시설·장비 등 자원의 양과 요양급여의 위험도를 고려하여 산정된다.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이 관료제도에 의지하여 시행되면서는 불가피하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인사, 조직, 처우, 노사 등의 문제 때문에 본래의 일이 제대로 수행되기 어려운 폐단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밖에 요양기관을 제1차, 제2차, 제3차 의료기관 및 특수의료기관으로, 또는 일반요양기관과 종합전문요양기관 내지 전문요양기관으로 구분하는 일, 이에 따라 요양급여의 비용을 달리 하는 일, 요양기관의 시설·장비·인력 및 진료과목 등의 차이를 고려하여 의료급여의 비용을 달리 산정하도록 하는 일, 요양급여의 방법·절차·범위·상한 등 요양급여의 기준을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일, 보험급여를 받을 수 없는 비급여대상을 정하고 구체적인 진료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일, 새로운 의료기술의 신속한 반영체계를 만드는 일 등의 복잡한 일이 비전문가일 수도 있는 관료 내지 유사관료에 의하여 어느정도나 정확하고 신속하고 발전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지 하는 점에 대하여도 역시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소위 시장경제의 자율적 매카니즘이 여러 분야에서 채택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통제시스템은 한편으로는 통제권을 행사하는 측의 부패만연을 걱정하여야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통제를 받는 측의 안일과 나태를 걱정하여야 하며 또다른 한편에서는 수혜자측의 과잉수혜를 걱정하여야 하는 3중의 폐단을 지닌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에 대하여도 역시 유사한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라.다수의견은 계약지정제를 채택하게 되면 충분한 숫자의 보험의를 확보할 수 없어 의료보험의 기능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단정은 실증적 근거가 없고 설사 근거가 있다 하여도 그 책임의 소재에 대하여는 이견이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 근거 없음이나 책임의 소재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단정은, 의료보험이 채택할 수 있는 방법이 강제지정제와 계약지정제의 두가지 길밖에 없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전제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다른 제3의 길도 있고 그 제3의 길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그것은 바로 공공의료시설의 확충이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자선기구 등이 적정한 수의 공공의료시설을 설치하고 여기서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도록 한다면 강제지정제의 폐단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다수의견도 이를 인정하면서 현실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 공공의료시설이 태부족이므로 이 방법에 의할 수는 없고 우선은 강제지정제의 채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충분한 숫자의 공공의료시설이 확보될 때까지는 강제지정제를 채택하고 장차 공공의료시설이 충분히 확보되면 그때 가서 계약지정제를 채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먼저 공공의료시설의 확충에 힘을 쏟아야 하고 그러면서 단계적으로 그 정도에 맞추어 의료보험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였어야 할 것이다.
마.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일의 순서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순서를 그릇친 문제는 다음 두가지에서 연유한다. 하나는 획일적 통제제도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과신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이기적 습성에 대한 무시(無視)이다. 이러한 과신과 무시에서 출발하는 모든 제도는 장기적으로 볼 때 모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는 장기적으로 볼 때, 계획경제의 전철이 보여주듯, 제대로 소기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과연 거둘 것인지 의심스럽다.
바.결국,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첫째로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이로써 문화의 발전을 지향하는 우리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그 채택이 주저되는 수단이고 둘째로 획일적 통제제도의 비효율성에 비추어 그 제도의 장기적 성과가 상대적으로 의심되는 수단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심은 요양기관 강제지정제가 기본권 제한의 입법으로서 갖추어야 할 수단의 적정성을 결한다는 결론을 짓게 하며, 따라서 헌법상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남으로써 의사 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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