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학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불편한 진실

팔락 2013. 6. 5. 15:01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불편한 진실

 

최근 경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으로 수면아래 있었던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결정한 경남도지사도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고 고백했다. 경남도 전체 예산을 책임지는 도지사 입장에서 누적 적자 279억 원을 떠안고 있는 진주의료원은 그야말로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다. 경남도의 지방부채도 만만치 않다. 3조 4천억 정도다. 최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주민부담으로 돌아올 “숨겨진 빚”, 지방부채는 100조가 넘는다고 한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풀뿌리 민주주의 꽃이라는 지자체선거를 마음껏 누린 대가물이다. 무책임한 선심성 행정의 결과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홍지사의 결단은 신선한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 인프라는 매우 취약하다. 전체 의료기관중 겨우 6%정도다. 최소한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의 필요성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공의료 강화론자들은 진주의료원 사태를 계기로 선진국 수준의 공공의료기관 확충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여기에는 막대한 예산투입이 필요하다. 아무리 공공의료기관이라고 할지라도 효율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금은 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산업화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공급과잉시대다. 물론 민간의료기관 비중이 월등히 높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

 

영국은 대부분 의료기관이 공공의료기관이다. 공공병상 비중이 100%로 OECD국가 중 가장 높다. 그렇다면 영국의 공공의료서비스 수준도 최상일까? 과거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부인이 영국을 방문하는 동안 한밤중에 응급상황이 발생했으나 찾아갈 응급실이 없어 싱가포르로 되돌아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급성충수염 환자조차 진료순서에서 밀려나는 국가다. 과연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공공의료가 제대로 확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즉 하드웨어인 공공의료기관만 확충된다고 저절로 공공의료, 의료 공공성이 확립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비효율과 도덕적 해이라는 독버섯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공의료기관이 6%에 불과하며 공공병상 비중이 14.2%로 OECD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쉽게 저렴한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나라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유다. 공공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공공의료서비스 제공은 결코 타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의료 환경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전 의료기관은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된다. 전 국민은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국가단일공적보험만 존재한다. 저렴한 의료급여제도가 있다. 강력한 국가주의 의료시스템을 가진 나라다. 이런 조건에서 민간의료기관은 곧 공공의료기관인 셈이다. 즉 민간이 대부분의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민간의료기관은 철저히 효율지상주의를 강요받으며 착취당하는 을의 신세다. 지속적인 원가 이하의 저수가 정책은 물론이고 최근 살인적인 포괄수가제의 강행은 그것의 한 단면이다. 정부, 보건복지부는 슈퍼 갑이다. 나아가 입법기관인 국회는 울트라 슈퍼 갑이다. 의사의 처방전 발급 매수까지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다.

 

민간의료기관의 업적이나 공로, 희생은 안중에도 없다. 사회적 존경은커녕 그저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 의료기관으로 낙인 찍혀 있다. 그 낙인을 찍은 사람은 바로 진주의료원 폐업에 적극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민간의료기관을 적대시 한다. 민간의 “민”자만 보여도 과민반응을 보이며 발작 증세까지 보인다.

 

공교롭게 일반인들은 공공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보건의료노조를 천사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노동조건 개선, 임금인상을 주장하며 맹렬한 노동쟁의, 노동투쟁을 연례행사처럼 감행한다.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내린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약자로 각인되어 있다. 적자가 나더라도 “착한 적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세금으로 충당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것 또한 불편한 진실이다.

 

또 하나의 착각은 대부분 공공보건서비스(질병조기진단, 질병예방사업, 전염염병 관리, 만성질환관리, 각종 위생사업 등)나 공공의료서비스(보편적 진료라고 해도 무방함)는 오로지 공공의료기관 만이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민간의료기관도 질병조기진단사업, 전염병 관리, 질병예방사업, 만성질환관리 등을 수행한다. 사실 인적, 물적 지원만 받는다면 민간의료기관이 얼마든지 공공보건서비스까지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보편적 진료조차 대부분 민간의료기관이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새로운 역할, 필요성, 존재감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현재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은 전시, 신종 플루와 같은 돌발적인 전염병 만연, 의사들의 집단폐업과 같은 국가위기 시에 최소한의 응급의료서비스 공급에서 그 존재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마저 민간의료기관은 철저히 을의 위치에 있다. 강제 동원, 강제 징발, 초헌법적 업무개시명령 등이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 공공의료기관은 민간의료기관이 제공하기 어려운 취약 영역을 담당하는 것에서 그 존재감을 찾아야 한다. 민과 공은 상호경쟁보다는 상호보완 관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공공의료기관도 생존을 위해 민간의료기관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다. 공공의료기관 위상에 걸 맞는 원만한 인적자원 지원과 재정 투입이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 시대에서 국가는 이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일 수 없다. 특별 재원을 마련하던지 세금과 보험료를 더 징수해야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표심에서 멀어지는 일이니 기피하거나 침묵한다. 역시 불편한 진실이다.

 

공공의료기관은 새로운 롤 모델을 찾아야 한다. 치매환자, 노인 인구의 급증으로 가택진료가 필요한 인구가 늘고 있다. 실질적인 방문간호프로그램이 요구된다. 그 외 호스피스 완화치료 등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찾아야 한다.

 

공공의료서비스는 공공의료기관이라는 하드웨어에서 저절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인적·물적 자원이 생산, 공급하는 서비스에 불과하다. 민과 공의 역할 분담,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를 통해 상호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 모델을 찾아야 한다. 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의료 공공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민을 죽여 공을 살리는 滅私奉公을 지양하고 민을 통해 공을 여는 活私開公의 새로운 공공성 개념이 절실하다.

 

앞서 설명대로 공공의료기관 확충은 곧바로 공공의료 확립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인 공공의료 확립은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공공의료 강화책은 정의로운 의료시스템 구축에 있다. 저렴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동네의원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올바른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재원 확보 없는 무모한 보장성 강화는 재고되어야 한다. 의료획일화정책, 지나친 간섭과 규제가 사라져야 한다. 적정수가-적정부담-적정급여가 현실화되어야 한다. 포괄수가제와 같은 폭압적인 의료제도들이 현실에 맞게 교정되어야 한다.

 

진주의료원 사태가 알리고자 한 진실이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