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어디에나 오해와 편견은 있다.
그러니, 오해와 편견이 있는 것이 나쁘다기보다는, 그 상황을 이용할 목적으로 오히려, 오해를 더 부추기고 편견을 심화시키려는 것이 더 나쁜 것이다. 특히나 정확한 사실을 알려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도록 노력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목적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악용할 때는 더욱 더 그러하다.
진주의료원 폐쇄를 반대하며 여론 몰이하는 자들 중에 그런 나쁜 짓을 하는 이들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확한 사실은 무엇인가?
첫째, <공공의료 서비스>와 <공공의료기관>의 <공공의료>는 서로 다른 말이다.
공공의료기관이란 공공기관이 개설한 의료기관을 의미한다.(개설자 관점) 그러나, 공공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만을 공공의료 서비스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서비스 관점)
특히 우리나라처럼 단일 보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당연지정제로 모든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요양기관이 되어야 하고, 국가가 정한 단일 수가 체계를 적용 받으며, 심사평가원의 의료비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개설자가 누구냐에 관계없이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기 때문이다.
민간의료 서비스란 공공의 의료보험제도나 국가가 운영하는 의료시스템 (NHS와 같은 이른바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고 환자와 의료기관과의 계약에 따라 의료비가 책정되는 의료공급의 형태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이건 공공의료서비스(Public medical service)와 민간의료서비스(Private medical service)라는 서로 다른 two track의 의료서비스 형태가 상존하는데, 나라에 따라 어느 곳은 공공의료의 비중이 더 크고, 어느 나라는 민간의료의 비중이 더 클 뿐 이 두 시스템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민간의료서비스는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의료기관의 20%가 민간의료기관이며, 심지어 NHS를 도입한 대표적인 국가 즉 영국이나 캐나다 역시 민간의료기관이 존재한다. 이들 민간의료기관은 NHS나 국영보험과 무관하게 환자에게 직접 진료비를 받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당연히 진료비는 더 비싸다.
우리나라에는 공공의료(Public medical service)에 배치되는 민간의료(Private medical service)는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더욱이 이런 관점에서 민간의료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개설자가 누구냐에 따라 비영리 의료법인이나 학교법인, 혹은 다른 형태의 비영리 법인과 개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이 있을 뿐이며, 이들은 모두 공공의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개설자에 따라 공공의료기관, 민간의료기관을 나누는 것은 한국 의료시스템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물론 불과 30 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도 민간의료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러나 당연지정제가 만들어지고,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된 89년 이후 이 나라에는 민간의료, 민간의료기관은 사라진 것이다.
둘째, 일부는 진주의료원과 같은 의료원은 공공의료를 제공하기에, 다른 민간의료기관과 달리 더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많은 의료급여 환자를 진료하며, 경영 실적과 무관하게 더 양심적인 진료를 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경상남도의 공공의료 예산의 90% 이상이 민간이 개설한 의료기관에서 사용되었으며, 경상남도 전체 의료급여 청구액 중 진주의료원이 청구한 금액은 0.5%에 불과할 뿐이다.
기실, 공공의료기관이라고 주장하는 지방공사 의료원의 역할은 이미 끝났다.
진주의료원은 100년 전에 만들어진 의료기관이다. 진주의료원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상당수 의료원은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전체 34개 의료원 중 32개는 197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
진주의료원은 다른 지방공사 의료원과 마찬가지로, 과거 민간의료가 존재하던 시절, 민간의료를 이용하기 곤란한 환자들을 돌보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의료기관이 대폭 늘어나고, 전국민의료보험과 당연지정제가 도입되면서 의료원은 공공기관이 개설했다는 것 외에 더 이상 다른 의료기관과 특별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국에 산재한 34개 의료원 중 단 두 곳만이 1970년 이후에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서울의료원은 의료보험이 도입된 1977년 개설, 울진의료원은 경상북도가 아닌 울진군에서 1998년 개설)
진주의료원 폐쇄의 근본적인 이유는 누적된 적자가 커져가고 있고, 적자를 메워주어야 할 경상남도가 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34개 의료원의 누적적자는 5천억에 육박하며, 해마다 5백억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지나치게 누적된 적자로 인해, 더 이상 의료기관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폐업하거나 폐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셋째,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공공의료의 포기로 간주하고, 마치 이 나라 공공의료체계가 당장이라도 붕괴될 듯 호들갑을 떠는 것은 상황을 악용하려는 술책에 불과할 뿐이다.
작년에만 해도 종합병원 8곳, 병원147곳, 요양병원 134곳, 의원 1,625곳이 폐업했다. 물론 그들이 모두 망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의 폐업은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들 의료기관이 문을 닫았다고 누구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언급한대로 이들 의료기관 역시 건강보험 하에 공공의료를 맡았던 의료기관들이다.
의료공급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의료계는 계속해서 경고를 울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의료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의료 공급 기관의 공통적인 문제이다.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경영으로 내핍을 견디어 내는 곳이 좀 더 오래 살아남을 뿐이다. 때문에, 방만한 경영, 비효율적 운영을 하는 것으로 의혹 받는 의료원이 적자에 허덕이고 폐쇄까지 이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뒤늦은 대책에 불과하다.
진주의료원 폐업으로 직장이 폐쇄되어 당장 직장을 잃게 되어 실망과 분노를 가질 직원들의 심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또 상급 단체로써 의료원 폐쇄를 반대하는 민노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전국 34개 의료원 중 노조가 없는 2개 의료원을 제외한 32개중 31 곳에 지부를 가지고 있는 민노총 입장에서는 의료원 폐쇄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우려할 터이고, 때문에 진주의료원 폐쇄를 이슈화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나, 이 장단에 정치권이 들썩이고, 대통령까지 거론해가며 대통령의 통치 철학까지 폄훼하는 것은 지나치다 할 수 있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악용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주의료원 사태를 계기로, 눈 앞에 닥친 의료공급의 붕괴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또, 의료원뿐 아니라 공공기관이 설립한 다른 의료기관들 역시 경영을 효율화하고 병원을 특성화하여 경쟁력을 갖추도록 방안을 모색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의료기관은 민간이 개설했든, 공공기관이 개설했든 국방과 교육과 더불어 사회를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회 안정망이며 최선의 복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로 풀되, 이를 정치놀음이나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 참고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의 정의에 의하면, “공공보건의료”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1)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원활하지 아니한 전문진료, 2) 국민건강을 위하여 국가가 육성하여야 할 필요성이 큰 전문진료, 3) 지역별 공급의 차이가 커서 국가가 지원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전문진료 등을 명시하고 있다.
진주의료원은 일반 병원과 똑같은 진료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공공보건의료의 특성화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고, 공공보건의료를 일반 병원도 하고 있다.
# 2012.04.27. 무상의료,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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