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과 다수결의 함정• 신중섭 | 2010-03-20 | 자유경제스쿨 |
경제학자들은 '공짜점심은 없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은 선거를 통해 그것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권자들 가운데 '공짜점심’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정치인들에게 공짜 점심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야당이 6ㆍ2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ㆍ중학생 전면 무상급식을 당론으로 채택하자,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던 한나라당도 표를 의식하여 결국 농어촌ㆍ저소득층 초중생에 대해 2012년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중산층 이하에 대하여 보육비ㆍ유아교육비를 2015년부터 전액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모든 초ㆍ중생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려면 연 2조 원이 들어가고, 보육ㆍ유아교육비 지원에는 1조 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현실적으로 예산 확보도 문제지만 예산이 확보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무상급식에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산 확보가 가능하다면 무상급식이 아니라 공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풀어나가야 할 교육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6ㆍ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적 행태이다. 교육자치 단체장까지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서 선거 쟁점을 교육 정책이 아니라 무상급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교육의 정치화이고 주변화이다. 물론 학생들의 건강과 직결된 학교 급식이 중요한 문제지만 국가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국가는 가난하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학생의 점심은 해결하면 된다. 능력 있는 학생의 점심은 국가가 아니라 부모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번 무상급식 논란에는 중요한 쟁점들이 포함되어 있다. 무상급식은 의무 교육의 일부이기 때문에 '국가급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급식’으로서 무상급식은 헌법이 규정한 의무교육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의무교육이 무상급식을 함축한다는 논리적 오류에서 출발하였다.
의무교육이 무상급식을 필연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된 헌법 조항은 다음과 같다.
헌법 제31조
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③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의 '교육 받을 권리’를 보장하면서 이 권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정과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위 헌법의 ②는 자녀 교육에 대한 1차적 책임을 부모와 보호자에 귀속시키고 있다. 자녀에 대한 교육은 1차적으로 그 부모와 보호자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는 것이다. 부모와 보호자의 의무는 국가가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교육 시설을 마련하는 경우에만 그 실효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③에서는 무상의무교육제도를 명시하여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밝히면서, 의무교육을 하는 학교에서는 수업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육의 의무는 국방이나 조세의 의무와는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국방이나 조세의 경우 개인은 그것을 자신의 선택으로 회피할 수 없지만 교육은 다르다. 교육의 경우에는 모든 국민이 무조건 국가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이 아니라 다른 교육을 선택할 수 있다. 사립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의무교육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무상교육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그것을 국가가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교육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의 교육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모든 사람이 그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의무교육이 '무상급식’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며, 함축한다는 주장은 의무교육에 대한 과잉 해석이다.
국가급식이 헌법이 규정한 의무교육의 일부라면 점심식사뿐만 아니라 신발, 실내화, 학용품, 교통비, 교복, 체육복, 이발비, 간식비 등 학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보장해야 한다. 왜 식사에서 멈추어야 하는가. 무상의무교육은 학생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점심무상급식은 미끄러운 경사면이다. 곧 의무교육은 모든 것을 국가 책임에 귀속시키는 사회주의국가로 귀착한다.
무상급식과 관련하여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단체급식을 장려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체급식의 정당성은 학생들의 건강과 관계가 있긴 하지만 단체급식이 그것을 어머니의 도시락보다 더 잘 보장한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식사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에너지 공급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학교의 단체급식은 학생들의 식단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식사는 신체를 위한 영양공급을 넘어 대화와 인간 관계의 장이고, 음식을 통해 개인의 선호를 충족시키는 즐거움의 장이기도 하다. 식사에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받을 때 우리는 미적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런데 단체급식의 경우 이러한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지 못한다. 단체급식은 몇 가지 정해진 식단을 학생들에게 강요한다. 어른들의 급식지도를 통해 학생들의 선택은 강요당하고 강제된다. '편식 방지’라는 명분으로 심지어 평소에 싫어하는 음식까지도 의무적으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강요되기도 한다.
식사에는 개인의 취향이나 습관이 많이 작용하게 마련이며 이것은 교육이 존중해야 할 창의성과 창조성과 같은 개성의 함양과 무관하지 않다. 식사에서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학생들의 창의성이나 창조성이 꽃 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뿐만 아니라 편식은 못된 식사 습관이 아니라 몸의 요구와 관련이 있다. 몸은 스스로 필요로 하는 것은 요구하고 우리는 그 요구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현대 과학이 발견한 사실이다. 단체급식은 우리 사회에서 무조건 선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고 이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무상급식에 대한 논의보다 시급하다.
자기 아이의 점심을 부모가 책임지는 것은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자식의 공부에 대한 자기 책임의 원칙은 자유인의 윤리이며 자녀 교육의 본보기다. 내가 일해서 내가 먹고사는 것은 인간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가정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개입으로 가정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교육에서 가정의 역할과 책무의 약화가 우리 교육의 많은 문제점의 원인이기도 하다. 무상급식은 가정의 역할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임에 틀림없다.
예산 확대로 인한 조세부담 증가와 학부모들의 자기 책임의 원칙이라는 도덕심을 훼손하는 올바르지 못한 국가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편승은 피하기 어려운 선거 민주주의의 해악이다. 자유주의를 다수결의 원칙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나 자유주의자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