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 >
비판적 합리주의
내가 합리주의라 할 때는 데카르트 같은 철학 이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존재’라는 철저하게 비이성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이성이나 합리주의를 논할 때는 오직,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통해, 그리고 나아가 자기비판을 통해 `학습`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합리주의자는 한마디로,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아가 남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에 대한 남의 비판을 쾌히 받아들이고 남의 생각을 신중히 비판함으로써 타인에게서 기꺼이 배울 의향이 있어야 한다.
-- 중략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중요한 점은 실수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실수를 통하여 무엇을 배우느냐이다.
-- 중략
합리주의적 태도란 다음과 같다.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 논의가 끝날 때쯤 우리 모두 이 문제를 전보다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자.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둘 때에만 우리는 토론에서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합리주의다.
-- 칼 포퍼
< 현실 >
오만과 편견
모든 사람에게서 위선을 발견할 수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은 예외다. 모든 사람들이 돈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명백히 알면서도 우리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편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편견을 자신에게서는 보지 못한다. 자아를 보존하는(self-preserving) 맹점 때문에 자신의 편견, 즉 다른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비합리적이거나 속 좁은 감정, 부정적 감정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불합리하거나 속 좁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집단에 대해 우리가 갖는 어떤 부정적 감정도 정당화된다. 그 집단을 싫어하는 태도는 합리적이고 근거도 충분하다. 우리가 억눌러야 하는 것은 그들의 편견이다.
자신의 편견을 보지는 못한다.
편견은 정보를 범주 단위로 인식하고 처리하는 인간의 마음의 성향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뇌는 한계가 있고 인지상의 에너지의 절약을 위해, 인간의 마음은 정보를 범주 단위로 인식을 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제약을 갖고 있다.
-- 중략
항상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수한 사실부터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정당화라는 ‘세이렌 요정의 노랫소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 거짓말의 진화,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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