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합리주의 요약

팔락 2011. 7. 25. 22:58

<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 >

 

내가 합리주의라 할 때는 데카르트 같은 철학 이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존재’라는 철저하게 비이성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이성이나 합리주의를 논할 때는 오직,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통해, 그리고 나아가 자기비판을 통해 ‘학습’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합리주의자는 한마디로,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아가 남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에 대한 남의 비판을 쾌히 받아들이고 남의 생각을 신중히 비판함으로써 타인에게서 기꺼이 배울 의향이 있어야 한다.

 

합리주의적 태도란 다음과 같다.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 논의가 끝날 때쯤 우리 모두 이 문제를 전보다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자.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둘 때에만 우리는 토론에서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합리주의다.

 

이것은 논의를 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보다도, 그 논의 자체가 어떤 것인가를 중시하는 태도이다. 이성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상호비판을 통해서 성장한다. 이성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상호비판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제도를 개발하는 일이다.

 

참된 합리주의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며 자기가 얼마나 오류를 범하는가를 아는 지적 겸허이며 자기의 지식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는가를 아는 지적 겸손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이성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논증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를 이전보다 더 분명히 보게 하는 배움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논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비합리주의는 이성보다 감정과 열정에 호소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그것은 본능과 충동에 큰 비중을 둔다. 비합리주의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하여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 너무 깊이 감명을 받는다.

-- 칼 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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