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학

동의보감

팔락 2010. 4. 8. 12:17

[이덕환의 과학세상] (226) 동의보감
동양의학 독창적 집대성한 세계유산
과학적 입증위한 한의학계 노력 필요

입력: 2009-08-12 21:02

■ 바이오&헬스

`동의보감'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로서는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등에 이은 7번째의 쾌거다. 우리는 이미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등의 세계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조선 왕릉 40기 전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07년에는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동의보감은 1596년 선조의 명에 따라 허준과 양예수 등이 시작해서 1610년에 허준에 의해 완성된 방대한 실용 의서(醫書)다.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1613년 인쇄돼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된 초판이다.

동의보감은 당시 중요하게 활용되던 의서의 내용을 통일된 시각에서 통합하고 정리한 것이다. 조선의 의서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의방유취(醫方類聚), 의림촬요(醫林撮要)를 비롯해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의 중국 의서 86종과 민간요법까지 두루 섭렵한 것이다. 특히 실용성을 중시해서 민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바탕으로 처방을 하고, 질병의 예방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처방의 체계도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동의보감을 번역되어 발간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동의보감이 당시 동아시아의 의학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집대성했고, 국가 차원에서 예방의학과 공중보건을 강조한 가치와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비록 `투명인간이 되는 법'이나 `귀신을 보는 법'처럼 오늘날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동의보감의 그런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적 시각에서 동의보감의 의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동의보감의 의학 체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400년 동안 인체와 질병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이 몰라보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심장의 기능과 혈액 순환의 정체를 밝혀낸 것이 1628년이었다. 역병(疫病)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 19세기 중엽이었다. 천연 약재의 한계를 극복한 합성의약품이 등장한 것도 19세기 말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 개발된 진단과 치료의 기술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누구도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을 무작정 신비화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동의보감에 실려있다는 사실만으로 최고의 비법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수천 년 동안 전해왔다는 사실도 큰 의미가 없다. 전통의학의 치료 효율은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지적을 거부하는 한의학계의 자세는 잘못된 것이다.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는 현대 의학의 가치는 제대로 인정을 하지 않으면서 한의학이 수천 년을 이어온 비법이라는 주장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한의학 이론이 사실로 드러나면 어쩌겠느냐는 식의 주장은 궤변일 뿐이다. 그런 주장에 앞서 한의학 이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의보감의 전통을 꾸준히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한의학계의 책임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무책임한 광고의 소재로 전락시켜버린 책임도 무겁다. 그런 실수를 인정하고 겸허하게 새 출발을 하겠다는 한의학계의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한다.

지난 400년 동안에 새로 밝혀진 의학적 사실들을 한의학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순리다. 오늘날 가장 절박한 것은 한의학의 신비화가 아니라 과학화다. 언론도 무작정 한의학을 편들 일이 아니다. 건강을 지키는 일은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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