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21년 전 출범 당시 촌지거부 운동을 기억하는 이들은 전교조의 ‘참교육’이 순수한 교육운동이었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런 순진한 분들은 이 단체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으로 10년을 복역한 이수일 전 위원장 같은 전사(戰士)들이 만든 조직임을 모르는 것 같다.
남민전은 남한 정부를 전복한 뒤 북에 동조하는 인민정부를 세울 목표로 총기 탈취까지 해 1979년 반국가단체로 대법원 판결을 받은 조직이다. 유신정권이 용공사건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조작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대법원 판결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하필 스승의 날인 15일에 이 씨의 저서 출판기념회까지 열어 치하했다.
전교조가 말하는 참교육이 뭔지도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이 창립선언문에서 밝힌 ‘우리의 교육’이란 ‘군사독재를 청산해 민주화를 이루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앞당길 동량을 키우는 민족사적 성업’이다.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이 참교육이라는데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진정한 교육과 거리가 멀다.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은 통일교육을 통해 이뤄진다”는 게 2006년 박미자 전교조 통일위원장이 참교육실천대회에서 한 말이다.
‘참교육 초심’ 같은 건 없다
이들이 바라는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홈페이지에 소개해 놨다. 이런 식의 참교육을 위해 전교조는 ‘참교육을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에 맞서 투쟁한다’고 실천강령에서 사실상 정치활동을 맹세하고 있다. 따라서 전교조가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비슷한 색깔의 단체와 연대투쟁 하는 건 그들로선 너무나 당연한 활동이다. 초창기 촌지거부운동이라는 전술에 감동한 학부모들만 속은 셈이다.
백번을 양보해 학생들을 입시경쟁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는 전교조의 주장이 옳다고 하자. 그러나 그 이유가 일반 국민들과는 다르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이장원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올 초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전교조는 경쟁적이고 입시위주인 사회, 즉 계급적이고 분단적이며 분열적인 상황에서는 민족 통일교육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즉, 교사가 교과수업만 잘해선 학생들을 ‘조국통일 동량’으로 키울 수 없어 수준별 수업과 고교 선택제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들이 교원평가제와 성과급제에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치사하기까지 하다. 1월 전교조의 참교육실천대회에서 ‘전교조 운동방향과 과제’를 발표한 진보교육연구소 이현 씨는 “교원들에게 가장 큰 고통으로 다가올 정책은 역시 교원평가”라고 했다. 노동 강도가 세질 뿐 아니라 교사 서열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 중고교 교사의 수업시간은 30개국 중 가장 적다. 15년 경력 초등교사의 보수는 룩셈부르크에 이어 2위였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열심히 가르치는 게 귀찮다고 평가제와 성과급제 반대가 민주화투쟁이라도 되는 양 목청을 높이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교원노조법 3조는 ‘교원의 노동조합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반노조는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노조의 결격사유로 규정한 데 비해 훨씬 엄격하다. 2006년엔 대법원이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정치활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전교조가 교단을 무대로 정치활동을 하는데도 묵인한 역대 정부는 직무유기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비로소 전교조 교사 명단이 전격 공개되고 정치교사들에 대한 징계방침이 나왔다. 그러나 이들이 교단을 계속 농단할지 여부는 6·2지방선거에서 어떤 시도교육감, 교육의원이 당선되느냐에 달려 있다. 전교조와 가치를 공유하는 교육감이나 교육의원이 다수 등장한다면 전교조 교육은 기세등등해질 게 분명하다. 선거벽보라도 유심히 보고 반드시 이름을 기억한 뒤 투표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선거공약 식별코드는 “무상급식”
문제는 공약도 다 아름다운 구호뿐이어서 누가 어떤 이념을 지녔는지 알기 힘들다는 데 있다. 대체로 전교조와 가치를 같이하는 후보들의 식별코드는 ‘무상급식’이다. 서민적, 민주적으로 보이려는 고도전술이라고 본다. ‘단계적’이라고 덧붙인 후보는 이런 포퓰리즘 공약이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따라한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때려서라도 가르치려는 건 지식이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연대(連帶)를 못하게 하는 상벌 포상제도를 없애자.” “하면 된다고 학생들을 기만하지 말라.” 참교육실천대회에서 나온 전교조의 교육관이다. 이런 전교조에 교육행정을 맡기기에는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황당해 보이지만 아직도 공산 소련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 향수에 젖은 러시아인이면 또 모른다. 에릭 홉스봄같이 양심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학자들도 그런다. 미국의 케이토 연구소는 작년 말 ‘공산주의에 대한 숙고’ 보고서에서 자본주의 혐오와 이상주의에 매몰된 서구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와 소련의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한다고 분석했다.
단 하루도 스탈린 치하에서 살아보지 않은 이들이 공산주의 만세를 외치는 데 대해 1956년 헝가리를 탈출한 폴 홀랜더 미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일갈했다. “평등에의 갈구 등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한, 정치적 신념은 오래간다는 걸 보여준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믿는 나로선 이들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같은 맥락으로 서울 세종로 한복판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 집단이 있더라도 관용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폭력시위나 불법파업으로 나라와 국민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1980년 ‘서울의 봄’과 ‘민주화운동’이라는 공식명칭을 갖기 전의 5·18이 우리나라의 자생적 좌파를 확대 재생산한 점은 아이러니다. 운동권이었던 홍진표 씨는 “광주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좌절 때문에 신군부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됐고, 증오하는 정권이 주장하는 반공주의가 신뢰를 잃었다”고 최근 저서 ‘친북주의 연구’에서 지적했다.
“학생들 가치혼란 초래, 유죄다”
5·18 이후 대학은 좌파성향이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민중민주파(PD)는 약해졌지만, 북한만은 잘나가는 것처럼 보인 덕에 민족해방파(NL)가 운동권을 장악했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한 그들은 김대중-김정일의 6·15정상회담으로 날개를 달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구’ 삼아 그동안 꿈꿔온 세상도 펼쳐봤다. 2006년과 2008년 선거에서 ‘폐족’ 선고를 받고도 그 맛을 잊지 못해 6·2지방선거에선 과거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태세다.
그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면 나는 인정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같은 계열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사상의 자유를 넘어 정치적 중립 의무를 깨는 건 관용 못 한다. 대전지법 항소심 재판부도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간부들에 대해 “교사의 정치적 견해 표명은 감수성과 모방성, 수용성이 왕성한 학생들에게 가치혼란을 일으킨다”며 14일 유죄판결을 내렸다.
혹시나 전교조가 ‘참교육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실체를 알 필요가 있다. 1989년 출범 때는 순수했던 게 아니라 이미 좌파에 경도된 이들이 만든 조직이 전교조이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활약한 이수일 전 위원장은 정신여중 교사를 하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해직돼 형(刑)을 산 인물이다. 남민전은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확정판결을 받았다. 북의 적화노선을 추종하면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 집을 털려 했고, 무기를 갖추기 위해 예비군훈련장에서 총을 밀반출한 자생적 공산주의 조직인데도 노 정권은 2006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
이 씨처럼 교단으로 복귀한 전교조의 사상세례를 받은 중고교생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졸업생이다. 친북반미를 정의로 배운 젊은 세대는 지금도 과거의 신앙을 ‘진보’라 부른다. NL계인 정진후 현 위원장이 온건파로 분류될 정도니 전교조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봐야 한다.
6·15를 앞두고 전교조가 통일운동에 분주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참교육실천강령이나 홈페이지에 공개된 계기수업 자료를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명시한 통일교육지원법 3조와 딴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말은 한마디도 없고 “남북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북한지원은 통일을 위한 투자니 우리가 북한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일색이다. ‘통일부 장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통일교육자를 고발해야 한다’는 통일교육지원법 11조대로 한다면 이들은 고발감일 수 있다.
‘희망의 학교’ 같은 레토릭 역겹다
정 위원장은 작년 한 인터뷰에서 전교조가 탄압받고 있다며 “촛불을 들었던 지금의 중고교생들이 몇 년 후 유권자로 등장한다”고 세상을 위협했다. 전교조가 미래 유권자들을 동색으로 물들이고 있음을 은연중 발설한 것과 다름없다. 그들이 어제 교육선언에서 밝힌 ‘협력과 소통으로 만드는 희망의 학교’란 동료 교원평가는 물론 수준별 수업까지 거부하면서 성과급은 나눠 먹는 곳에 가깝다.
진정한 교육을 하고 싶어 전교조에 몸담고 있는 순진한 선생님들은 이제 눈을 떴으면 좋겠다. 전교조는 웰빙 교직을 위한 보험사가 아니다. 평등만이 옳다는 정서적 자위도 혼자 하기 바란다. 국민세금으로 봉급 받는 교사라면, 설령 공부는 못 가르쳐도 자식 같은 제자를 시대착오적 종북(從北)세대로 만드는 죄는 짓지 말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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