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소크라테스 그리고 칸트와 함께 인간 이성이 인류의 통합의 기초라고 믿은 합리주의자였다. 그러나 인간의 관념이 계급이익에 의해 결정된다는 그의 교설은 합리주의에 대한 신념의 쇠잔을 재촉했다. 우리의 관념은 민족적 이익과 전통에 의해 결정된다는 헤겔의 교설도 합리주의에 대한 신념의 토대를 파괴한다. 이렇게 합리주의는 좌우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현대에 있어서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의 대결은 그러므로 중요한 쟁점이 아닐 수 없다.
합리주의는 비판적 논증에 귀를 기울이며 경험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뜻한다. 따라서 그것은, <내가 잘못되고, 당신이 옳은지 모르겠소.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진리에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이오.>와 같이 말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논의를 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보다도, 그 논의 자체가 어떤 것인가를 중시하는 태도이다. 이성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상호비판을 통해서 성장한다. 이성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상호비판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제도를 개발하는 일이다.
참된 합리주의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며 자기가 얼마나 오류를 범하는가를 아는 지적 겸허이며 자기의 지식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는가를 아는 지적 겸허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이성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논증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를 이전보다 더 분명히 보게 하는 배움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논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비합리주의는 이성보다 감정과 열정에 호소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그것은 본능과 충동에 큰 비중을 둔다. 비합리주의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하여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 너무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러한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의 대결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보펀적이며 비개인적인 진리의 표준에 호소한다는 의미에서의 합리성은 지고(至高)로 중요하다. 그것은 그 합리성이 쉽게 날개를 펴는 시대에 있어서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합리성은 침뱉음을 당하며, 자기와 의견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을 언제나 죽여 버릴 억센 힘을 결여한 사람들이 지니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발로 채임을 당하는 불행한 시대에 더욱 더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다.
-- 버트란드 러셀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주의의 허구 (0) | 2010.05.27 |
---|---|
무비판적 합리주의와 비판적 합리주의 (0) | 2010.05.26 |
사회학주의 (0) | 2010.05.26 |
소크라테스 4, 산파술, 너 자신을 알라 (0) | 2010.05.23 |
소크라테스 3 (0) | 2010.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