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더 느리지만, 훨씬 더 훌륭한 뇌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_ 바버라 스트로치
패턴 인지, 어휘, 귀납적 추리, 공간 감각에서 최고의 수행력을 보인 사람들은 중년이다.
_ 바버라 스트로치
짧은 퀴즈 하나. 다음 목록을 보라.
1월 2월 3월 4월 1월 2월 3월 5월 1월 2월 3월 6월 1월 2월 3월—
다음에 올 단어는?
풀었는가? 그럼 이 퀴즈는 어떤가.
1월 2월 수요일 3월 4월 수요일 5월 6월 수요일 7월 8월 수요일—
다음에 올 단어는?
이제 숫자를 가지고 해보자. 다음 수열을 보라.
1 4 3 2 5 4 3 6 5
다음에 올 숫자는?
모두 풀었는가?
이것들은 기초 논리와 추리력을 측정하는 질문들이다. 답은 순서대로 7월, 9월이고, 수열의 경우 다음 숫자는 4일 것이다(그리고 다음엔 76. 수열은 1–432–543–654–76 등으로 진행된다).
시애틀종단연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셰리 윌리스(Sherry Willis)와 남편 워너 샤이(K. Warner Schaie)는 가장 장기적이고, 규모가 크며 가장 존중받는 수명 연구 중 하나를 이끌고 있다.
통칭 시애틀종단연구(Seattle Longitudinal Study)라 하여 1956년에 시작해서 40년이 넘는 동안 6,000명의 정신적 기량을 체계적으로 추적해온 연구이다. 시애틀에 있는 대규모 건강 관리 단체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연구 참가자들은 모두 건강한 성인들로서, 20세와 90세 사이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남녀 반반으로 구성되었다. 펜실베이니아주 연구팀은 7년마다 참가자들을 다시 검사해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아본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종단 연구라는 점이다. 시간이 가도 같은 사람들을 연구한다는 뜻이다.
인지 검사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중년
시애틀 종단 연구에서 불과 몇 년 전에 나온 최초의 방대한 결과를 보면 연구 참가자들은 여러 인지 검사에서 다른 어떤 때보다도 중년에 평균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윌리스와 동료들이 측정하는 능력에는 어휘(얼마나 많은 단어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의 동의어를 얼마나 많이 찾을 수 있는가), 언어 기억(얼마나 많은 단어를 기억할 수 있는가), 계산 능력(가감승제를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가), 공간정향(어떤 사물이 180도 돌아갔을 때 어떻게 보일지 얼마나 잘 식별할 수 있는가), 지각 속도(녹색 화살표가 보일 때 얼마나 빨리 단추를 누를 수 있는가), 귀납적 추리(위에 언급한 것과 유사한 논리 문제를 얼마나 잘 풀 수 있는가) 등이 포함된다.
보험 계약서를 해독하는 것에서부터 결혼식 계획을 세우는 것까지 일정한 일상 과제들을 당신이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공정한 지표다.
20대에 받은 성적보다 좋다니
그런 검사를 통해 연구자들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발견했다.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인지 기술들을 측정하는 여러 검사에서 현대의 중년에 속하는 연령(대략 40대에서 60대까지)일 때 받은 성적이 앞서 20대에 받은 성적에 비해 좋았던 것이다. 검사한 여섯 범주들 가운데 네 범주—어휘, 언어 기억, 공간 정향, 그리고 귀납적 추리(아마도 그 무엇보다 우리의 용기를 북돋아줄 부분)—에서 최고의 수행력을 보인 사람들의 나이는 평균적으로 40세에서 65세 사이였다.
"최고 수준의 능력은 중년에서 발휘"
윌리스는 저서인『중간의 삶Life in the Middle』에서 “연구에서 고려한 정신 능력 여섯 가지 가운데 네 가지의 경우 최고 수준의 능력은 중년에서 발휘된다.”라고 보고한다. “남녀 모두, 수행력이 절정에 도달하는 시기는 … 중년이다.”
“지능에 대한 상투적인 관점이나 교양 있는 보통 사람들이 견지하는 순진한 이론들과 달리, 많은 고차적인 인지 능력의 발달 면에서 청년기는 인지적 절정기가 아니다. 연구 대상이 된 여섯 가지 능력 가운데 네 가지 능력은 중년인 사람들이 본인의 25세 당시보다 더 수준 높게 발휘하였다.”
내리막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었어?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청소년기의 뇌에 관한 과학을 조사한 뒤 우리의 뇌가 25세까지 계속해서 변화하고 향상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그러한 이론에 머무르면서 우리의 뇌는 십대를 관통하는 내내 대규모의 혁신을 겪긴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라고 믿고 있다.
나 역시 뇌는 중년에 들어서면 굳어지고 고리타분해질 뿐이며 설사 크게 변화한다 하더라도 십중팔구 내리막을 향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낮은 게 아니라 더 낫다고"
어느 날 오후 윌리스와 이야기를 나눈 뒤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나는 여전히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던 것에 관해 떠들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거 알고 있었어?” 포도주를 곁들여 파스타를 먹고 있는 눈앞의 중년 집단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의 뇌가 우리가 20대였을 때보다 더 낫다는 거? 낮은 게 아니라 더 낫다고.”
반응은 신속했다.
“웬 미친 소리.”
후배 한 명이 말했다. 52세의 토목 기사로 컨설팅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빌이었다.
“그건 절대로 사실이 아니에요. 내 뇌는 절대로 20대 때만큼 좋지 않아요. 그때 근처에도 못 간다고요. 그렇게 빠르지가 않은 걸요. 정말 어려운 문제들은 풀기가 더 힘들고. 솔직해지자고요, 만일 내가 오늘 스탠퍼드 공과대학에 다니려고 하다간, 죽기 십상일 거라구요. 죽기 십상!”
자신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능이 있다
빌이 틀린 건 아니다. 우리의 뇌가 어느 정도 느려지는 건 사실이다.
주의는 더 쉽게 흩어지고, 때때로 맞붙는 어려운 새 문제들은 부담스럽다. 지하실에 왜 내려갔는지 기억할 수 없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빌은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되지만 매일 하는 일에서조차 현재의 뇌를 젊은 시절의 뇌와 비교하면서 결점들만 본다. 그리고 자신의 뇌가 자신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윌리스 연구에서 나온 데이터에 의하면 논리, 어휘, 언어 기억, 공간 정향이라는 네 가지 중요 영역에서 중년에 이른 연구 참여자들이 얻은 점수는 그들이 20대 때 얻은 점수들보다 더 높았다. 흥미로운 성(性)차이들도 있다.
최고 수행력에 도달하는 시기는 평균적으로 남성들이 약간 더 일렀다. 남성들은 50대 후반에 절정에 도달했다. 남성들은 또 처리 속도를 약간 더 오래 유지하고 공간 정향 검사에서 전반적으로 더 나은 점수를 얻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여성들은 언어 기억과 어휘에서 일관적으로 남성들보다 점수가 높았고, 60대에 들어서까지 점수가 계속해서 상승했다.)
25년 전의 뇌와 비교하라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하나같이 그걸 모르는 걸까? 어째서 우리 중년들은 빌처럼 뇌 방면에서는 지금의 우리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일까?
우리 자신의 뇌도 도움이 되지 않긴 마찬가지다. 뇌는 차이를 탐지하고 이상한 것을 찾아내도록, 다시 말해 카펫에서는 찢긴 부분을, 풀숲에서는 뱀을 발견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뇌에서 벌어지는 변화들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차이를 비교할 때 참조하는 대상은 십중팔구 이삼 년 전의 뇌이지, 25년 전의 뇌가 아닐 것이다.
그래 놓고 약간의 이동만 눈에 띄면 우리는 자신의 뇌가 대학원 시절 이래로 하향 궤도를 그려왔다고 확신한다. 분명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일부 대단치 않은 쇠퇴
시애틀 종단 연구에 참여했던 53세와 60세 사이의 사람들도 20대 당시보다는 더 높은 수준에 있었지만, 직전의 7년 기간과 비교하면 ‘일부 대단치 않은 쇠퇴’를 보였다. 일정한 지적 능력에서 보이는 예년과의 차이가 아무리 적더라도, 우리는 지적 능력의 하락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자신의 지적 기능에 대해 중년 개인이 느끼는 것은 종단 데이터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비관적일 거예요.”
윌리스가 말한다.
“비교를… 더 짧은 구간에 걸쳐서 했을 가능성이 높죠. 누구든 20년 전보다는 7년 전의 자신에 대한 느낌이 더 생생하거나 더 정확할 테니까요.”
빌이 당장 자신이 하는 일들이 정말이지 형편없다고 평가했을 때 그는 보나마나 자신의 뇌를 25세 때의 뇌와 비교한 것이 아니라 45세 때의 뇌와 비교하여 52세인 지금이 약간 더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우리가 으레 그렇듯 결함만 예민하게 자각하고 자신의 중년 뇌가 지닌 높은 수준의 능력 전반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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