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아렌트
1960년,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악명 높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부에 붙잡혔다. 그가 이스라엘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렌트는 [뉴요커]의 특별 취재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 과정을 취재하고 아이히만을 심츰 면접했다.
1961년 12월에 열린 아이히만 재판을 직접 재판정에서 지켜본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는 1963년에 출판되어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먼저 아렌트는 피고석의 아이히만에게서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도, 냉혹한 악당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아이히만은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다. 어떤 이념에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다.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칸트까지 인용하며 명령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비록 그 내용이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일과 자신의 책임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히만에게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독일 태생의 유대계 정치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인터뷰해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내놓는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행을 '악의 평범성'으로 개념화한다. 흔히 '악의 평범성'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하지만 아렌트는 이는 '오독'이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려던 게 절대 아니에요. 내가 하려던 말은 오히려 그 반대예요. 그 사람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기를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85쪽)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이 무능력이에요. 그래요. 그런 무능력."(86쪽)
그러니까 악은 공감 능력을 상실한 메마른 가슴에 깃드는 것이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악의 참모습인 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지그문트 바우만도 "오늘날 악은 누군가의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말없는 윤리적 시선을 외면하는 눈길과 무감각 속에서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악은 애국심이나 의무감을 지닌 첩보요원이 어느 평범한 시민의 삶을 단호하게 파괴할 때 존재할 수도 있다"고 일갈했다.
아이히만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애국심'이니 '충성'이니 하는 맹목적 가치들(특히 독재정권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사들)이 악의 자양분이라는 사실이다.
아렌트는 말한다.
"아히히만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아무 범행 동기가 없었어요. 아이히만은 전형적인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공무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일 때 정말이지 대단히 위험한 신사예요. 여기에 이데올로기는 그다지 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봐요."(77쪽)
"망설임은 있었죠. 그들은 망설임을 가진 공무원들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의 망설임은 인간이라면 그저 한 사람의 공무원으로 존재하기를 멈춰야 하는 한계가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명확히 보여줄 정도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어요."(95쪽)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과 불일치하는 것보다는 세계 전체와 불일치하는 편이 낫다. 나는 통일체니까"라고 했다. '시대와의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숙명을 예견한 말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하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 전체와의 불일치 대신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선택한다.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마저도 '자기합리화' 기제를 통해 무력화시킨다.
아이히만을 비롯해 전범재판에 넘겨진 누구도 잘못을 뉘우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권위있는 조직의 일부일 때 부당함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많이 증발할까요? 개인에게 주어진 책임은 그저 부분적인 책임일 뿐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의 도덕적 통찰을 얻지 못하게 할까요? 아이히만은 '나는 내 책상에 앉아 나한테 주어진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99쪽)
"관료제가 본질적으로 익명성을 갖는다는 사실 말고도, 무자비한 행위는 무엇이건 책임이 증발되는 것을 허용해요."(100쪽)
자신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내비치지 않았던 아이히만이 심문 과정에서 괴로워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아이히만은 그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그 어떤 일에도 괴로워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그도 한 가지 사소한 사건에 괴로워했어요. 빈에서 유대인 공동체 회장을 심문하다가 그 사람 뺨을 때린 일이죠. 사람 얼굴을 때리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일들이 많은 이들에 일어났다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요, 하지만 그는 뺨을 때린 자신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고 그걸 대단히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194쪽)
예루살렘 법정의 판결문은 이랬다.
"실제로 오히려 책임의 정도는 자신의 두 손으로 치명적인 살해 도구를 사용한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증가한다."(102쪽)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과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는 책임 범위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사유해야 한다.
"자존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건 기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180쪽)
기본적으로 사유를 하는 거예요. 전문적인 사유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유를 말하는 거예요."(98쪽)
악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악인과 가해자가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감내한 고통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피해자의 '명예와 품위'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한다.
"가해자가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가 피해를 당하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의 명예 및 품위와 관련된다고 말했어요. 이건 피해자가 감내한 고통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무엇인가 올바로 세우는 것하고도 전혀 관계가 없고요. 이건 정말로 명예와 품위의 문제예요. 독일인들이 그들 가운데 살인자를 두고서도 추호도 동요하지 않으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유대인의 명예와 품위에 반하는 생각이에요."(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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