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학

'양의사, '양의학' 용어 사용은 현대의학을 몰라서 하는 소리/펌

팔락 2015. 11. 5. 10:19

'양의사, '양의학' 용어 사용은 현대의학을 몰라서 하는 소리

 

대한의사협회가 15일 의료계 출입기자들에게 ‘양방’, ‘양의사’ 표현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자 대한한의사협회가 이에 반박하는 등 ‘양의사’, ‘양방’, ‘양의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양의사’, ‘양방’ 같은 용어 사용은 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벌어지는 일이며 쓰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와 같다.

 

첫째로, 우리나라 의료법에는 ‘의사’, ‘치과의사’,‘한의사’를 명시하고 있으나 ‘양의사’라는 명칭은 없다. ‘양의사’라고 지칭하는 대상은 법령 상 ‘의사’라는 용어를 지칭하므로 ‘의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옳다. 의료법에서 ‘의사’는 ‘치과의사’와 ‘한의사’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지 않는다.

 

참고로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한의사(한의04)를 “한의술과 한약으로 병을 고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오늘(16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네이버 국어사전을 인용해 한의사를 ‘한의학을 전공한 의사’라고 정의했다고 주장했지만 국립국어원은 몇 달 전 이미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에서 지적한 오류를 반영해 의미를 수정했다.

 

둘째로, 의사를 ‘양의사’로 쓰지 않았다고 해서 혼동을 일으킬 일은 없기 때문에 불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우리 고모는 치과의사고 고모부는 의사야”라고 말하지 “우리 고모는 치과의사고 고모부는 몸의사야”라거나 “우리 고모는 치과의사고 고모부는 양의사야”라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이모는 한의사고 우리 이모부는 의사야”라고 했을 때 고모부의 직업이 의사인지 치과의사인지 한의사인지 혼동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양의사라는 명칭이 의미상 틀렸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현대의학을 행하는데 현대의학은 지역적 기원이 바탕이 아닌 과학을 기반으로 전 세계 의사들과 과학자들의 연구로 발전해왔다. 또한 현대의학은 지역적 특색이 없이 세계 공통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의학에 지역적 명칭을 붙이면 해당 지역의 전통의학의 의미로 통한다. 중의학, 한의학, 티벳의학, 몽고의학 등의 용어는 그 나라의 현대의학이 아닌 그 나라의 전통의학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의학’, ‘양방’, ‘서양의학’은 용어는 4체액설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전통의학을 지칭할 때나 어울린다.

 

‘양의학’이나 ‘양방’이라는 명칭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 한의학과 의학의 대비는 지역전래요법과 현대의학의 구도이지 지역 구도가 아니다. 매년 전 세계의 의사와 과학자들이 발표하는 수십만 편의 논문으로 지식을 쌓고 교정해나가며 발전하는 현대의학을 케케묵은 옛날 책들에 의존하는 한의학과 지역 구도로 나누는 것은 심각하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준다. 한의사들이 ‘양의사’, ‘양의학’이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대의학과의 대등성을 은근히 주장하고 민족주의적 구도를 이용하여 한의학의 대중적 위상을 높이려는 상징투쟁 목표를 노린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이율배반적 주장의 함의를 정확히 파악하여 정확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의사는 서양 지역의 전래요법이 아니라 현대의학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양의사’라는 말도 틀렸다. 반면에 전래요법을 행하는 한의사는 의사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고 지역 이름을 붙여줘야 옳다. 서양전래요법인 사혈요법 등을 행하는 전래요법사가 있다면 양의사라는 명칭은 그들에게나 어울린다.

 

한의사라는 명칭도 따져보자. 한의사는 원래 ‘한나라 의사’를 의미하는 ‘漢의사’를 쓰다가 1986년 우리나라를 뜻하는 ‘韓의사’로 명칭을 바꿨다. 그러나 19세기 말 청나라와 조선에서 의료 활동을 한 미국인 선교사 알렌의 기록에서도 한국의 의학은 본질적으로 중국의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190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 발행된 국어사전들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한의학을 그저 중국에서 전래한 전통의학으로만 인식해왔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의사를 ‘양의사’로 부르는 편보다 한의사를 ‘한나라의사’나 ‘중의사’로 부르는 편이 합당하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은 한의학이 우리 고유의 의학이라는 인식은 최근의 이미지 세탁으로 조작된 것이고 예로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한의학을 중국의 것으로 인식했으며 한의계의 ‘일제잔재’ 운운하는 주장은 옳지 않음을 설명한 적이 있다. http://i-sbm.org/?1A5g7Z)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 의학이 중국에서 유래된 의학 한 가지밖에 없었을 때에는 중의학과는 전혀 다른 서양의 의학이 도입되면서 ‘서양의학’이라는 표현으로 나눌 필요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이 아닌 서양의학을 교육받은 의사가 처음 배출된 것은 1900년대가 되어서다. 따라서 20세기 초까지는 서양의학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주류가 아닌 소수에 해당했기 때문에 ‘양의사’라는 표현이 사용될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대의학은 서양만이 아닌 전세계 의학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서양인들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이 함께 쌓아왔고 함께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얼마전 노벨상의 주인공이 된 개똥쑥에서 분리한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은 중국인이 중국에서 개발했다. 개똥쑥은 한방에서 한약재로 사용하지만 (‘서양과학’이 아닌) 과학적 방법으로 개발된 아르테미시닌은 ‘한약’이나 ‘중의약’이 아니다. 그렇다고 서양에서 개발하지도 않는 아르테미시닌을 ‘양약’으로 부르는 것도 어색하며, 현대의학의 영역에 속한 ‘의약품’이라고 해야만 타당하다. 현대의학은 서양인들만의 업적이 아니다.

 

이런 상식을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양의학’, ‘양의사’라는 표현이 잘못되었고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리라 본다. ‘양의사’는 ‘의사’로, ‘양방’은 ‘현대의학’으로, ‘양약’은, ‘의약’으로, ‘양한방 협진’은 ‘의한방 협진’으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

 

2015년 10월 19일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이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