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공공의료가 뭔가?
메르스 사후 대책으로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라”, “폐쇄된 진주의료원을 복원하라”는 정치인, 관료, 기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과연 올바른 지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틀린 주장이다. “공공의료”, “공공보건의료”,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선 외국 문헌에서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라는 용어는 찾기 어렵다. 즉 글자대로 “public medicine”이라는 용어는 없다. “public health”라는 용어는 있지만 우리의 “공공의료”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이와 대치되는 private health라는 용어도 없다. 다만 private과 연관된 단어로서 private health providers, private health insurance 등의 용어는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는 英韓 번역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이며 정체불명의 용어다. 사회통념상 기존 “공공의료”는 公益을 위해 공공부문(public sector)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민간의료는 私益을 위해 민간부문(private sector)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로 흔히 사용되었다.
그러나 사회의료보험 등장으로 민간이든 공공이든 같은 종별의 의료기관은 의료질과 서비스료가 똑같음에도 아직까지 정치인, 관료, 기자, 국민들, 의사들조차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를 선악 이분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컨대 똑같이 100만 원짜리 충수돌기염 수술을 서울대학병원에서하면 공익을 위한 착한 의료, 공공의료지만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하면 사익을 위한 나쁜 의료, 민간의료가 된다. 결국 공공의료 강화는 곧 공공의료기관 증설로 이어진다. 이에 보건의료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의료서비스는 외부효과가 큰 재화로서 수요예측이 어렵고 시장진입이 자유롭지 못해 시장기능에 따른 수요와 공급에 의존할 경우 불안정해질 수 있다. 정부개입이 정당화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의료서비스는 분명 공공재가 아니다. 배제성과 경합성을 갖는 사적재(가치재)다. 그럼에도 공공의료라는 말은 자주 사용된다. 왜 그럴까?
굳이 공공의료를 글자대로 풀이하면 公共性이 요구되는 의료를 말한다. 公共性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다. 공공성의 핵심은 보편성과 형평성이다. 즉 앞서 이분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보편성과 형평성을 고려한 의료서비스 모두를 공공의료에 포함시켜야 한다.
2000년 제정된 “공공 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공공의료기관이 생산하는 의료를 공공의료로 정의했다. 그러나 개정 법률안에서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보건의료기관이 생산하는 보편적인 의료뿐만 아니라 설립 및 소유주체를 떠나 기능적인 관점에서 필수적이고 공익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공공과 민간이 효율적으로 역할 분담하여 국가가 공공보건의료 기능에 대하여 지원·육성, 평가·감독할 수 있도록 법적 패러다임을 전환하였다. 강제지정제 합헌, 단일공적보험, 사회보험의료의 보편화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결과 2015.1 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 2조에 “공공보건의료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공공보건의료”란 국민 전체의 건강을 보호·증진시키기 위해 공중,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보건서비스(public health services)는 말할 것도 없고 개별 의료일지라도 형평성(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과 보편성(보편적인 의료), 즉 公共性이 요구되며 공적중재가 필요한 의료(medicine)를 기능적인 관점에서 민간과 공공의료기관이 협력하여 공급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했다.
특히 공급부족이 우려되어 민간과 공공이 주력해야 할 공공보건의료사업은 보건의료 취약지역(도서지역이나 농어촌 등) 및 취약분야(암, 정신질환, 나병, 결핵, 에이즈와 같은 특수질환, 응급의료, 혈액공급 등), 취약계층(군, 경찰, 보훈, 산재, 등 특수대상자, 의료급여, 노인, 아동과 모성, 장애인 등)에 대한 의료서비스 공급과 발생 규모 및 심각성 등의 사유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필요한 질병의 예방(재해의료, 감염병, 조기질병진단, 예방접종 등)과 건강 증진(만성질환관리 등) 및 보건교육(금연교육 등)으로 정했다.
간단히 2015.1 이후부터는 민간의료기관이든 공공의료기관이든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 공급과 보건의료의 公共性 강화를 위해 공공보건서비스와 보편적인 의료인 사회보험의료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주력해야 할 공공보건의료사업을 포지티브 방식으로 규정한 반면 기존 공공보건의료 개념은 공공보건서비스와 민간이 공급하기 어려운 취약영역, 취약계층, 취약지역 등 네거티브 방식으로 한정 규정했었다.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의료(사회보험의료)는 개인의 권리(privilege)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리(right)로 간주된다. 이것의 역사적 배경은 17세기 철학자 존 로크(의료는 인간의 자위적 본능을 추구하기 위한 박탈할 수 없는 권리다),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의료는 지불능력에 관계없이 포괄적 서비스로 받아드려야 할 권리다), 유엔 인권선언(1948.12. 제 25조, 모든 사람은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역무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실업, 질병, 불구, 배우자와의 사별, 노령, 그 밖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다른 생계 결핍의 경우 사회보장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의 실천으로 영국은 1948년 NHS를 도입하였고 독일이나 다른 사회보험 국가들은 NHI를 도입하게 되었다. 반면, 미국은 아직도 개인의 권리(privilege)로 받아드리는 성향이 강하다. 특히 프리드먼 교수의 경우, 의료는 그 편익이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 개인에게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실제 미국에서의 의료서비스 공급은 주로 민간의료보험에서 공급한다.
대부분 현대 복지국가에서는 건강권을 기본권으로 간주한다. 우리나라 헌법도 건강권을 기본권으로 상정했다. 따라서 협의의 공공의료는 공공성이 요구되는 의료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사회보험의료 전체를 말한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에서 의료는 분명 사적재지만 사회보험의료가 보편화되면서 의료는 규범적(normative perspective) 차원에서 공공재가 된다(이규식). 즉 사회보험의료=공공의료로 간주된다.
건강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상정한 이상 정부는 기본권 보장의 책임을 지게 된다. 영국은 조세로, 독일은 사회보험료로 전 국민 의료를 보장한다. 물론 이런 선진국에서는 가능한 한 의사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보험자와 공급자는 계약지정제, 소비자에게는 선택권을 부여하여 공공의료와 별도의 독립된 민간의료시스템(민간의료보험, 민간의료기관)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보험자와 공급자는 계약지정제가 아닌 강제지정제를 합헌으로 인정했다. 소수집단인 의사들의 기본권(재산권, 직업수행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거침없이 침해한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권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별도의 민간의료보험을 불허한 채 無所不爲의 단일 공적보험만을 운영한다.
우리나라는 1989년 전국민 의료보장을 완성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보험수가를 고시하고, 전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되었기 때문에 어느 병원을 가든 의료수가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1989년 이후부터는 공공의료라는 용어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공공의료는 진주의료원과 같이 공공의료기관에서 생산하는 의료라는 등식은 사라져야 한다.
따라서 공공의료의 발전 방향은 진주의료원처럼 단순히 공공의료기관을 늘리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수가 구조를 과감히 개선한 연후에 보장성을 높이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원가이하의 수가구조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보장성도 형편없다. 그저 의미도 없는 공공의료기관 숫자만 늘리는 것이 “의료의 공공성 강화”인양 주장한다.
이미 “공공보건의료에관한법률”은 제정되었고 개정(2015)되었지만 아직도 기능과 역할에서 공공병원은 민간병원과 별로 차이가 없다. 분명 공공재정이 투입된 공공병원이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민간의료기관과 달리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의료나 특수 목적의 의료를 제공하도록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보건의료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서 찾아야 한다. 예컨대 이번 메르스 사태와 같이 전염병 전담 거점병원, 전문병원 설립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민간의료기관과 공공의료기관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모두 공공의료(사회보험의료)를 제공하는 공공의료기관인 셈이다. 아울러 단일공적보험, 단일수가로 운영된다. 경제적, 지리적 접근성이 뛰어나며 계층적 차별이 없다. 법적으로 전국민의 공적보험가입이 의무화되어 있다. 의료적 빈곤층은 없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의료의 공공성”, “공공의료의 인프라”는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다. 문제는 공중, 대중을 상대로하는 취약한 공공보건서비스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았듯이 전염병관리를 비롯한 방사능, 화생방 피해에 따른 재해의료 등에 대한 설비와 장비, 메뉴얼은 타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다. 따라서 메르스 사후 대책은 무엇보다 공공보건서비스에 대한 인프라 구축, 보건의료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서 찾아야 한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았듯이 환자들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게 마련이다. 문제는 민간의료기관을 내원 한 경우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강제로 폐쇄 명령을 받고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다. 적절한 보상은커녕 규제만 강요한다면 향후 누가 신종 전염병에 맞서겠는가?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장병을 철저히 무시한 정권은 현재 비난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적, 바이러스와 싸운 의료인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보건의료의 公共性을 주장하려면 형평성 차원에서 이런 억울한 상황까지를 충분히 감안할 때 그 의미를 다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최소한 피할 수 있는 진료거부권이라도 줘야 하지 않는가? 의무만 있고 권리나 보상은 없다면 이미 공공의료가 아니다.
특히 민간의료기관은 순수 민간재원으로 건물을 설립하고 시설과 장비를 마련했음에도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나 특별 보상조차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의료기관으로 낙인찍는 병적인 사회다. 물적, 인적 지원에서도 차별 당한다.
만약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불이익을 당한 민간의료기관에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우리나라는 공공의료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공보건의료에관한법률”은 허수아비 법률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사회보험의료가 등장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강제지정제와 단일공적보험은 해체되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 이후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공의료”, “공공보건의료”,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정확한 개념부터 짚어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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