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치료한다는 한약들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암을 치료한다고 광고하는 한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개 한 달에 수백만 원의 치료비를 받는다.
암을 치료한다는 한의원들은 면역력이 어쩌고, NK세포가 어쩌고, T세포가 어쩌고 자신들의 치료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들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늘어놓기도 하고, 암을 억제하는 효능이 SCI급 논문 통해 입증받은 원료를 사용한다며 동물실험이나 세포실험 논문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한방 암치료제 ‘넥시아’는 임상 논문들을 근거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것들은 효과를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세포실험은 어떤 물질의 효과와 작용기전을 밝히는 가장 기초적인 연구이다. 그러나 세포실험은 배양접시 안에서의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이기 때문에 세포실험에서 나타난 효과는 실험동물이나 인체에서 같은 효과를 나타낼 확률이 낮으며 독성을 일으킬 수도 있다. ‘효과에 대해 추가적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음’을 제시하는 정도의 의미에 그친다. 어떤 채소나 과일에 있는 성분이 항암효과를 나타낸다는 언론 보도는 자주 접할 수 있는 반면 새로운 항암제 개발은 드물게 이루어지는 이유도 이와 같다.
동물 실험도 한계가 명확하다. 실험용 생쥐는 인간과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각자 7,500만년 동안 서로 다르게 진화해왔기 때문에 인체에서의 영향은 별도로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해야한다.
세포실험보다 인체와 조건이 유사한 동물실험을 통해 약물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면 식약처에서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식약처는 임상시험 자격을 얻을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자료를 요구한다. (우리나라는 이례적으로 한약으로 쓰이던 물질들은 ‘천연물신약’이라고 해서 임상 1상까지 면제해주는 경우가 많다.)
1. 임상시험용의약품(위약 포함)의 구조결정, 물리화학적 및 생물학적 성질에 관한 자료
2. 비임상시험 성적에 관한 자료
가. 약리작용에 관한 자료
(1) 효력시험자료
(2) 일반약리시험자료 또는 안전성약리시험에 관한 자료
(3) 흡수, 분포, 대사 및 배설시험자료
나. 독성에 관한 자료
(1) 단회투여 독성시험자료
(2) 반복투여 독성시험자료
(3) 유전독성 시험자료
(4) 생식발생독성 시험자료
(5) 발암성 시험자료
(6) 시험물질특성에 따른 기타 독성 시험자료(국소독성, 의존성, 항원성 및 면역독성 등)
임상시험은 3단계로 진행되는데 항암제로 승인을 얻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 제3상 임상시험에서는 암환자를 신약군과 표준항암제군(비교군)으로 무작위배정한 뒤 치료효능과 안전성을 비교 평가해 자격을 인정받으면 의약품으로 허가받아 시판할 수 있다.
이렇게 항암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치료효과를 입증하는 최소한의 자격으로 '무작위배정 대조군 연구'를 요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약들은 ‘한방 원리’와 ‘옛날 옛적의 문헌’ 말고는 아무런 근거가 없거나 인체가 아닌 세포나 동물실험 몇 개가 근거의 전부다. 암치료 한약 중 가장 근거가 많다는 넥시아조차 식약처의 승인을 받은 임상시험을 진행하지도 않았으며, 임상 논문들은 '무작위배정 대조군 연구'보다 질이 낮아 효과를 입증하는 증거로는 불충분한 증례보고나 후향적 임상연구에 국한된다.
신약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약 1~2천 종류의 후보물질 중에서 50가지 정도가 효능 탐색 실험에 들어가고, 이 중 1개 정도가 임상시험에 돌입한다. 2014년 Nature Biotechnology에 발표된 분석에 따르면 임상시험에 돌입한 암에 대한 신약후보물질 중에서 신약으로 허가받는 비율은 6.7%다. 즉, 한약과는 달리 기초과학적 개연성을 갖추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임상시험에 도전할 만큼 동물 실험과 수많은 논문을 통해 효과에 대한 기대를 모은 후보물질 조차도 93.3%는 인체에서 효과가 없다고 판명되는 것이다.
고작 세포실험 논문, 동물실험 논문 몇 편을 가진 한약이 실제로 인체에서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어떤 한방 옹호론자들은 “한약이 효능을 입증하면 한의사들은 못 쓰고 의사만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일부러 한의사들이 연구를 안 하는 것이다”라고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말하자면 옻나무 추출물이 임상 연구를 통해 암치료 효과가 입증되는 순간 한의사들이 한약에 옻나무를 쓰지 못하게 금지된다는 소리인데 그런 일은 벌어진 적도 없고 벌어질 가능성도 없다.
서양에서는 대체의학의 효능을 평가하기 위한 이중맹검 대조군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부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나라는 근거가 없어도 잘 팔리니 연구를 안 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한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근거들을 가지고 엄격한 자격시험을 통과한 항암제보다 한약에 많은 돈을 지출하는 환자들을 보면 이래서 한의사들은 연구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드러나는 순간 자기 발등을 찍는 꼴이지 않은가. (침 치료가 효과가 뛰어나다고 믿는 발목 염좌도 가장 권위있는 연구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Kim et al, 2014] 한의사들은 쉬쉬하며 발목이 삐어서 온 환자들에게 침을 놓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가가 나서서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기 전까지는 환자들 스스로가 현명하게 선택하는 방법 밖에는 없어 보인다.
참고문헌
Hay M, Thomas DW, Craighead JL, Economides C, Rosenthal J. (2014). Clinical development success rates for investigational drugs. Nature Biotechnology, 32, 40–51. doi:10.1038/nbt.2786
Kim TH, Lee MS, Kim KH, Kang JW, Choi TY, Ernst E. (2014). Acupuncture for treating acute ankle sprains in adults. Cochrane Database of Systematic Reviews 2014, Issue 6. Art. No.: CD009065. DOI: 10.1002/14651858.CD009065.pub2.
국가암정보센터, http://www.cancer.go.kr/mbs/cancer/subview.jsp?id=cancer_020501010000)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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