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언어와 행위
어스틴은 많은 저작물을 남긴 철학자는 아니었다. 주로 토론과 강연을 통해서 그의 생각을 전달했는데, "감각과 감각가능자"(Sense and Sensibilia)는 그의 사후에 출판된 강연록이며, "말과 행위"(How To Do Things with Words)도 그가 1955년 하버드 대학에서 행한 윌리엄 제임스 강연록이 사후에 출판된 것이다.
"감각과 감각가능자"에서 어스틴은 위에 제시한 둘째 신념에 기초해서 그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들을 매우 면밀히 살펴보고 지각의 문제를 논하기 위한 용어들인 'sensum', 'sensible', 'sense-data' 와 같은 단어들, 그리고 '보인다', '. . .처럼 보인다', '. . .인 것 같다'와 같은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에 주목했다. 철학자들은 이들을 동의어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말과 행위"에서 어스틴은 언어의 본성에 대해서 논의할 때, 이미 사용되고 있는 기술적 용어들은 제구실을 잘 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분야야말로 기술적인 용어가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용어를 제시했다. 그는 언어의 사용에 대해서 널리 사용되고 있던 표현인 기술적 사용과 가치적 사용이라는 구분을 싫어했는데, 그러한 구분이 필요로 하는 좀더 효과적인 구분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그는 먼저 언어의 수행적 사용(performative use)에 대해서 논한다.
어스틴은 우리의 언어에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있는데, 먼저 사실에 대해 진술하는 사실적 발화(constative utterance)와 사실에 대한 발화가 아닌 수행적 발화(performative utterance)를 구분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는 무엇을 기술하거나 사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또 그런 말은 참 또는 거짓도 아니다. "나는 내일 비가 온다는데 만 원을 걸겠다"와 같은 내기의 경우, "다음 시간에는 휴강하겠다"는 약속의 경우, "이 자동차를 포니라고 이름짓노라"라는 이름짓기의 경우, 그리고 서약이나 선서, 유언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것은 어떤 사실에 관한 문장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발화 자체가 일종의 행위이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발화의 경우 참도 거짓도 아니다. 어스틴은 이런 종류의 발화 또는 문장을 간략하게 '수행문'(performative)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문과 수행문의 구분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스틴은 후에는 좀더 세련된 구분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발화행위(the locutionary), 발화수반행위(the illocutionary), 발화효과행위(the perlocutionary)의 구분이다.
발화행위는 단순히 발화된 것의 의미이며, 발화수반행위는 그런 말하는 행위를 가지고 발화자가 행하는 것이며, 발화효과행위는 말을 함에 의한 행위를 통해서 발화자가 의도한 결과를 얻는 것이다.
"호랑이가 다가온다"라는 문장에서 만약 발화자가 그저 호랑이가 다가오는 사실을 묘사한 것이라면 이것은 말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만약 발화자가 이 말을 가지고 어떤 광경에 대한 코멘트 혹은 경고를 한 것이라면 이것은 말함에 의한 행위이다. 그리고 만약 이 말을 통해 사람들을 도망치게 만들 의도로 발화한 것이라면 이는 말을 함을 통한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어스틴의 구분은 철학은 물론 언어학에서 매우 널리 사용되었으며, 수정되거나 비판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