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팔락 2013. 12. 16. 11:56

맹자와 현대과학

최근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다)’이란 말이 화제가 됐다. 국회를 방문한 김종필 전 총리가 “배가 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느냐”며 언급한 것이 계기였다. 무항산 무항심은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에 나온다. 맹자는 제나라 선왕(宣王)이 정치에 대해 묻자 백성들이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지내면 절로 선하게 된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무항산 무항심’은 현대과학으로도 증명됐다.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경제적 궁핍은 사고능력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8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인도 농민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봤더니 사탕수수 수확 직전(궁핍)과 직후(풍요)의 지능지수(IQ)는 최대 13포인트까지 차이가 났다. 경제적 스트레스는 계산능력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사고까지 저해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인간 두뇌의 작동 원리를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두뇌는 기본적으로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비슷하다. 여러 가지 업무를 함께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만, 처리하는 가짓수나 작업량이 많아질수록 연산 속도가 늦어진다. 가난에 따른 압박감은 두뇌 회전 속도를 늦추고 시야까지 좁아지게 만든다.

 

하지만 ‘무항산 무항심’의 논리는 간혹 논리적 모순에 부딪힌다. 특히 연말을 앞둔 요즘 같은 때에 말이다. 돈 많은 사람은 기부와 나눔에 인색한데 오히려 서민들이 남을 위해 쌈짓돈을 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을 설명하는 맹자의 또 다른 화두가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남을 가엾이 여기는 착한 마음이다. 이런 심성은 타고난다. 역시 뇌과학으로 증명이 가능한데, 우리의 뇌 속에는 타인의 경험이나 상황을 자기 것처럼 공감하게 하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이란 게 선천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어려운 이웃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껴야 인간이다. 항산이 없어도 남을 돕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군자(君子)다.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비판

부자가 기부나 나눔에 인색하고 서민이 더 후하다는 말은 잘못되었다. 실제 심리학 및 사회과학 학자들이 조사한 통계를 보면 일반적으로 부자가 더 자주 많은 기부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물론 액수에 있어서 재산에 비해 상대적인 비율이 어떤 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이 기부에 후하다는 생각은 몇 가지 요인에 의해 편향되어 있다. 즉, 가난한 사람이 기부한 경우는 사람들의 공감을 많이 사기에 사회적으로 기사화되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대체로 부자들의 경우가 기부에 익명성이 강한 경향이 있다.(부처의 춧불에 비유한 설법이나 성경에서의 예수의 가르침 등의 영향도 가능하다.)

 

부자들의 기부 성향이 높은 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기부를 하려는 성향 즉, 도덕성이 높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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