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1. 진료의 질이 떨어진다.
의학은 과학과 예술의 통합이라고 흔히 말한다. 다음은 해리슨 내과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의사가 되면 의사에게는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기회, 책임과 의무가 지워진다. 환자의 고통을 돌보기 위해서 의사에게는 기술적 수기 능력, 과학적 지식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환자는 단지 증상, 징후, 기능이상, 손상된 장기와 정서 교란의 집합체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는 지략, 동정심과 이해력을 가질 것이 기대된다.
양질의 진료와 진단을 위해서는 환자에 대한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의 수집이 필요하며, 의사는 시진, 문진, 청진, 촉진, 각종 검사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정보를 얻고 통합하며, 의사의 진찰은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오는 순간의 걸음걸이, 자세, 눈빛, 표정 등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불가능한 촉진은 제외하더라도, 원격진료에서 시진, 청진에 의한 정보는 기계적인 결함으로 인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진의 경우는 질이 비슷하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수집하는 정보는 말이 전부가 아니다. 상대방의 표정 변화, 억양, 제스처, 시선의 변화, 말에 대한 상대방의 대응 속도 등이 모두 의식 또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포착되어 정보에 통합되며, 이런 정보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서 말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심리학 연구의 결과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결핍과 더불어 원격진료의 경우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한다. 환자의 반응에 대한 무의식적인 정보의 결핍으로 인한 의사의 심리적 압박과 함께 부적절한 반응은 대화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하며, 이는 시간의 지체와 상호간의 짜증을 유발하여 공감에 기초한 상대방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의사와 환자간의 라포 형성을 방해한다.
그리고 기계 조작에 따른 주의력의 분산은 이런 이해의 부족과 정보의 결핍을 더욱 강화한다.
환자들은 다양하다. 자신의 통증을 과장하는 경우도 있고, 과소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환자도 있다. 다양한 환자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판단을 원격진료를 통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원격진료를 통해서도 의사가 지략, 동정심과 이해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이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진찰과 처방이 과연 나올 것인가? 나는 부정적으로 본다.
2. 경제적 문제
원격진료의 경우 그 질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수가는 정상적인 대면 진료보다 낮을 것이다.
원격진료를 위한 기계 구입비용을 제외하고 판단하더라도 대학병원의 경우 수익성이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정상적인 대면 진료보다 시간은 많이 걸리는데 그 수가가 낮다면 과연 대학병원에서 이를 이용할까?
진료를 보는 교수들이 한가하다면 한번쯤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르다.
소위 빅 5라고 하는 병원의 경우, 외래 환자를 보는 데만도 시간이 부족해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원격진료에서 수반되는 의사의 심리적인 압박감을 감수하고 수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원격진료를 도입하는 대형병원 경영자가 있을까?
나는 부정적으로 본다.
위의 두 가지 사항만 고려하더라도, 원격진료란 제도를 통해 얻는 이익은 사이비 의료인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양심을 속이는 일부 의원일 것이다. 하지만 그 피해는 환자와 양심적인 의사 그리고 사회 전체일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우리가 당장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것으로 판단된다.
나쁜 제도가 사회에 끼치는 피해는 당장 눈에 보이는 부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질서의 흐름을 깨트리고 이를 정상으로 복원하는데 걸리는 시간적인 비용 분만 아니라 국민들의 정서적 손상도 크다. 그런데도 이런 나쁜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으며 불안하다.
바둑에서 악수는 악수를 부른다고 한다. 잘못된 제도를 도입하여 그 피해가 나타나면, 그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제도의 보완이라는 명목으로 제도를 더욱 왜곡시키는 경향이 강한 관료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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