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돈수頓悟頓修 돈오점수頓悟漸修
부처가 되기 위해서 진심(眞心)의 이치를 먼저 깨친 뒤에 오랜 습기(習氣)를 제거하여 가는 수행방법이다. 즉, 수행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가, 마음의 이치를 먼저 밝혀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로 이 논의는 당나라 종밀(宗密) 이후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종밀은 다섯 가지의 돈점설을 제시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단계를 밟아서 차례대로 닦아 일시에 깨닫는 점수돈오(漸修頓悟), ② 닦기는 일시에 닦지만 공행(功行)이 익은 뒤에 차차 깨닫는 돈수점오(頓修漸悟), ③ 차츰 닦아가면서 차츰 깨닫는 점수점오(漸修漸悟), ④ 단번에 진리를 깨친 뒤 번뇌와 습기를 차차 소멸시켜가는 돈오점수(頓悟漸修), ⑤ 일시에 깨치고 더 닦을 것이 없이 공행을 다 이루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이다.
이 가운데에서 돈오돈수는 과거부터 닦아온 결과로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일반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다섯 가지 설 가운데에서 고려 중기의 지눌(知訥)은 돈오점수설을 채택하여 우리나라 선종에 정착시켰다.
그는 “마음은 본래 깨끗하여 번뇌가 없고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므로 돈오라 한다.”고 하였고, 또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어서 의정(疑情)을 대번에 쉬고 스스로 자긍(自肯)하는 데 이르면 곧 수심인(修心人)의 해오처(解悟處)가 되나니, 다시 계급과 차제가 없으므로 돈오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쳤다 하더라도 무시(無始) 이래로 쌓아온 습기를 갑자기 버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습기를 없애는 수행을 하여야 하며, 점차로 훈화(薰化)하여야 하기 때문에 ‘점수’라고 하였다. 마치 얼음이 물인 줄 알았다 하더라도 열기를 얻어서 녹아야 비로소 물이 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얼음이 물인 줄 아는 것을 돈오라 하고, 얼음을 녹이는 것을 점수로 본 것이며, 먼저 본성을 알고 행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깨치기 이전에도 수행을 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수행은 바른 길이 아니며 항상 의심이 따른다고 하였다.
벤젠 구조식의 발견
독일의 대화학자 케큘레는 벤젠의 분자 구조식을 고리 모양으로 발표(1865)한 학자다. 그가 제안한 고리 모양의 구조식은 당시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많은 화학자들은 허를 찔린 듯 감명을 받았고 저마다 칭송하기를 마지않았다.
케큘레는 이 벤젠 구조식을 발견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때, 런던에 있던 나는 밤낮없이 자나 깨나 분자 구조식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을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았고, 이러한 헛고생과 무수확으로 노심초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고단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마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이내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꿈속에서도 나는 벤젠의 구조식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의 내 앞에 뱀이 나타나더니 자기의 꼬리를 입으로 물면서 원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것으로 몇 달 동안의 고민이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원효대사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
어려서부터 스승에게 배우지 않아도 될 만큼 재주가 남달랐던 원효대사는 29세에 출가해 자기의 집을 「초개사」라는 절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차돈 같은 훌륭한 고승이 되리라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상대사가 찾아왔다. 불법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당나라에 갔다 와야 행세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당나라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짐을 꾸렸는데, 가는 도중 수원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여행길에 지치고 몹시 피곤해 갈증이 났던 원효대사는 머리맡에 있는 물을 확인도 하지 않고 아주 달게 마셨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물은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었던 것이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달게 마셨던 물이 해골물이었음을 알자 원효대사는 구역질이 나 견딜 수 없었다.
" 그래, 맞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해골에 고인 물을 모르고 마실 때는 시원했으나 사실을 안 뒤 구역질이 나니, 그것은 결국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게 아닌가 ? " 이런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초개사'로 돌아왔다.
단속 평형설 [ 斷續平衡說 , punctuated equilibrium ]
최근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진화론으로 고생물학이나 화석학에서 출발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화석 기록을 보고 가장 당혹해 하는 것은 그토록 기다리던 중간형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믿었던 화석에서 오히려 종과 종간의 단절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학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세우게 된다. 그것이 단속 평형설이다. 단속 평형설은 1960년대 들어서 미국의 고생물학자 엘드리지(Niles Erdredge, 1943∼)가 처음으로 주창한 학설이었는데, 1980년대 들어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 교수에 의해 정리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굴드의 주장은 진화는 다윈이 생각했던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속 평형설에 의하면 진화는 짧은 기간에 급격한 변화에 의해 야기되나 그 후 긴 기간이 지나도 생물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의 일부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살아 있는 화석은 몇 천만 년 또는 몇 억 년 동안이나 전혀 진화되지 않고 옛날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생물을 뜻한다. 예를 들자면 실러캔스, 투구게, 앵무조개, 뉴질랜드의 쐐기도마뱀, 은행나무 등 상당히 많은 수의 종들이 지금까지 진화되지 않은 채 태고의 모습 그대로 현재 살아남아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생물은 종류에 따라 진화의 속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러 지층에 걸쳐 발견되는 화석을 연구하면 생물은 전혀 변화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 바로 단속 평형설이다. 단속 평형설에 의하면 화석에서 볼 수 있는 종간의 뚜렷한 단절을 새로운 종이 형성될 때에 생물은 급격하게 형질이 변하나 그 변화가 일단 완료하게 되면 다시 안정된 상태가 유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은 생물이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주장한 나머지 생명체의 변화에 대한 저항성, 즉 생물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물의 안정성을 무시해왔다.
만약 다윈의 진화론이 옳다면 진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진화가 현재 진행형인 것이라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지구상의 어디에서인가 진화는 진행되고, 우리는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그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는 없다. 굴드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여 생물은 급격히 변화한 다음 그 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주장하였다. 단속 평형설은 기존의 계통점진설(phylitic gradualism)과 차이를 보인다.
마음의 변화
다중지능을 발표한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마음의 변화’라는 책에서, 인간의 마음은 어떤 충격적인 상황에서 갑작스런 변화가 오거나(백정이 칼을 놓으면 부처가 된다는 말이 의미하듯 돈오돈수에 가깝다.) 점진적으로 서서히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바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였다.(돈오점수에 가깝다.)
엄격한 의미에서 돈오돈수는 자연계에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케큘레가 벤젠 구조식의 발견한 순간의 현상은 돈오돈수로 보이지만 그 과정을 보면 수많은 연구와 기초지식이 그 배경에 깔려있다. 원효의 경우도 순간적으로 깨달음의 찾아왔지만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정진이 바탕에 깔려있다. 모든 창조성의 배경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올린 탄탄한 기초와 열망 그리고 배경 지식이 있어야만 한다.
단속평형설도 그렇다. 유전학적으로 DNA를 분석해 보면 캄브리아기의 생명의 대폭발이 있기 오래전부터 즉 선캄브리아기에서부터 점진적으로 DNA의 변이가 축척되어 있었다. 그런 축척된 변이가 지구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갑작스럽게 다양한 표현형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이것이 리차드 도킨스의 주장이며 대부분의 현대 생물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마음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적인 상황에서 심리적 타격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그중에서 마음이 극적으로 변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를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변화를 향한 지향성이 잠복해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모든 것은 인과응보이며 파스퇴르의 말처럼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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