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이론(次善理論, theory of the second best)
1956년 켈빈 랭카스터(Kelvin Lancaster)와 리처드 립시(Richard Lipsey)가 쓴 경제학 논문으로 학술지 <리뷰 오브 이코노믹스터디스>에 실렸다가 주류 경제학자의 심한 비판에 시달렸으나 그 후 그 중요성이 인증된 이론.
개요)
k개의 효율성 조건 중에서 두 개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세 개가 충족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 비해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해서는 k개의 조건이 동시에 만족되어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중 하나가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할 때, 나머지 (k-1)개의 조건만은 모두 만족되는 것이 차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는 이와 같은 직관이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들이 증명한 바에 따르면, 이미 하나의 효율성 조건이 위배되어 있을 때 만족되는 효율성 조건의 수가 늘어난다 해서 사회후생이 더 커지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내용을 갖는 차선의 이론(theory of the second best)은 여러 가지 경제개혁 조치를 추진할 때 비합리적인 측면들을 점차로 제거해 나가는 점진적 접근법(Piecemeal approach)이 때때로 예기치 않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해 주고 있다.
모든 비합리성을 일거에 제거하지 않고 그 중 일부분만을 제거한다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사회의 상황이 예전에 비해 더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선의 정리는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상세 내용)
근대 경제학에서 가장 강력한 이론 가운데 하나는, 애덤 스미스의 유명한 예견을 따서 이름 붙힌, 완전 경쟁 시장은 완전효율을 이룬다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정리’다. 차선이론은 비록 그게 사실이라 해도 무의미하다고 본다.
만약 완전효율 상태를 이루기 위한 요건이 하나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차선’인 시장, 즉 완전경쟁 시장에 거의 근접하는 시장이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좋은 시장, 또는 아예 완전히 비경쟁적인 시장보다 효율적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따라서 경제학 원론 강의의 단골인 ‘일반균형’ 모형에서 시장이 효율을 증진시키는 장치라는 전제를 끌어낼 수 없다.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는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완전효율의 요건 하나가 충족되지 않을 때 완전효율에 최대한 근접한 결과를 성취하는 유일한 길은 완전경쟁 시장의 성립요건을 추가로 몇 개 더 깨뜨리는 것임을 증명해보였다.
교환은 이롭다는 우리의 평범한 직관과 완전한 자유방임경제의 옹호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다는 것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눈치 채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 관해 경제학자들이 증명 비슷한 것을 제시하기 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린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케네스 애로우와 제라드 드브뢰가 ‘일반균형’ 모형으로 그런 증명을 구성한 것도 1956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그러나 개별적 교환에 대한 논의를 교환을 통해 조직된 하나의 완전한 경제에 일반화시키기 위해 애로우와 드브뢰는 상당히 극적인 일련의 이상화 작업을 행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구매하려는 재화에 대해 모든 사람이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재화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절대 운반되지 않고, 모든 사람은 모든 물건의 현재 가격 및 가까운 미래의 가격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 때문에 애로우와 드브뢰는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는지, 현실에서는 어떤 결과의 초래가 예상되는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아무것도 증명한 바 없다. 대신 그들은 완전경쟁 시장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고도로 이상화된 모형을 구축해놓고, 그런 모형에서 도출되는 결과가 완전하게 효율적임을 보여준다.
실제적인 경제 현실에서 완전경쟁 시장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물리학에서 유용한 논리인 만약 모형의 전제가 현실과 닮았다면 모형의 결과 또한 현실과 근접하리라고 모든 경제학자들이 추측했다. 바로 이 점이 립시와 랭카스터가 밝혀낸 오류였다. 경쟁과 관련한 모형의 현실성은 효율에 관한 현실성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최선과 가장 근접한 것이 다른 선택보다 낫다는 사고에는 오류가 웅크리고 있다.
시장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소중한 도구다. 두 사람이 경제 거래에 임할 때는 쌍방이 그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을 바탕으로 재화와 용역의 생산 및 분배를 경쟁시장에 맡길수록 좋은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완전경쟁이라는 이상에 다가갈수록 바람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정리는 아무것도 장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완전경쟁이 낫다고 추정할 근거조차 제공하지 못한다. 시장을 통한 해법의 채택 여부는 사항 별로 결정돼야 하며, 이상화된 경제가 어떻게 기능하느냐 하는 추상적 모형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차선이론이 의미하는 바다.
--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조지프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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