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혹스 유전자로 본 동물계의 통합

팔락 2012. 1. 19. 16:26

빌 맥기니스와 마이크 레빈은 털북숭이 동물들이 딱히 특별하다는 편견을 갖지 않았다. 스위스 바젤 대학 발터 교수 실험실에서 연구하던 그들은 호메오 돌연변이에 마음을 빼앗겼다. 두 사람은 파리의 호메오 유전자 모두에 호메오박스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후, 즉시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그들이 논리적이라고 판단한 다음 연구 내용은 바젤 주변에 사는 온갖 생물들의 DNA를 추출하여 호메오박스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벌레, 지렁이, 개구리, 소, 물론 사람의 샘플 역시도 얻기 위해 다른 실험실에 손을 벌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박이 터졌다. 두 사람은 다른 동물에서도 호메오박스를 마구 발견해낸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서로 다른 종들의 호메오박스 염기서열을 면밀히 분석해본 결과 그것들이 매우 비슷했다는 점이다. 몇몇 쥐나 개구리의 경우 호메오도메인에 해당하는 60개 남짓한 아미노산에 초파리의 호메오도메인인 아미노산 60개 중 59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위치가 동일했다. 말문이 막히는 일이었다.

 

파리와 쥐는 5억 년 전에 서로 다른 진화 계통으로 분리되었다. 유명한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나 대부분의 동물 종류들이 탄생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이토록 상이한 동물들의 유전자 사이에 이토록 유사점이 많으리라고 짐작한 생물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혹스 유전자들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 유구한 진화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보전되어 온 것이 분명했다.

 

척추 동물을 포함한 몇몇 동물에서 혹스 유전자가 발견되고 몇 년이 지났을 떄, 그것을 덮어버릴 만큼 대단한 사건이 벌어졌다. 쥐의 혹스 유전자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보았더니 파리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복합체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4개 복합체이다). 게다가 각 복합체 속 유전자들의 순서는 각각이 발현되는 쥐의 신체부위 순서에 정확하게 대응했다. 상이한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이 그저 유전자 염기서열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복합체 조직을 이루는 방식, 나아가 배아에서 활용되는 방식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혹스 유전자 복합체들은 파리와 쥐처럼 상이한 동물들의 발생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동물계의 거의 모든 일원들, 사람이나 코끼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초파리 연구를 열렬히 지지했던 생물학자들조차 혹스 유전자가 이토록 보편적르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토록 중요하리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상이한 동물들이 그저 비슷한 종류의 도구로 만들어진 것을 넘어서 아예 똑같은 유전자들로 만들어졌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