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뛰어난 유전학자들이 발생학의 기나긴 슬럼프를 극복했다. 그들은 초파리의 발생을 통제하는 유전자들을 밝혀냈다. 초파리는 오랜 기간 동안 유전학의 핵심 일꾼이었다. 과학자들은 초파리 발생유전자들을 실제 발견하고 1980년대 내내 연구함으로써 발생에 대해 흥미로운 전망을 열었다. 또한 형태 형성에는 논리와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몇몇 초파리 유전자들의 속성이 밝혀진 직후, 진화생물학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근 백 년 넘게 생물학자들은 상이한 동물들의 유전자는 서로 완전히 다르게 구성되어 있으리라 짐작했다. 형태의 차이가 클수록 유전자 차원에서 두 동물의 발생 과정은 공통점이 적을 것이다. 현대적 종합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에른스트 마이어는 '매우 가까운 친족관계가 아니고서야 상동유전자를 찾아봤자 소용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떤 생물학자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왔다. 초파리 몸 조직 과정의 중요 부분을 관장하는 것으로 밝혀진 유전자들 대부분과 흡사한 유전자가 사람을 포함한 다른 동물에도 존재하며, 기능도 같았던 것이다. 뒤이어 또 다른 사실이 밝혀졌다. 눈, 사지, 심장처럼 동물마다 구조가 달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으리라 보았던 여러 기관들의 발생이 동물에 상관없이 동일한 유전자들로 통제된다는 것이다.
이보디보 혁명의 첫 개가는 외형이나 생리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복잡한 동물이 공통의 '마스터(master)' 유전자들로 된 '툴킷( tool kit, 도구상자)을 갖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마스터 유전자는 몸 전체나 일부를 형성하고 무늬를 결정하는 유전자인데, 파리든 딱새든, 공룡이든 삼엽충이든, 나비든 얼룩말이든 혹은 사람이든간에 모두 같은 것을 지닌 것이다. 그 발견 때문에 동물의 친족관계에 대한 기존의 개념, 동물 간의 차이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으며, 진화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는 특정 종의 DNA 전체(게놈)의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다. 파리와 사람이 일군의 발생유전자들을 공유한다는 사실 외에도 쥐와 사람이 약 2만9천 개의 거의 동일한 유전자들을 공유한다는 사실, 침팬지와 사람의 DNA는 99% 가까이 같다는 사실도 안다. 인간이 동물계를 넘어선 존재이며 동물계로부터 진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수치들 앞에서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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