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에 대한 평가는 순기능도 있고 역기능도 있다. 육상경기는 선수들의 달리기 속도를 측정해서 순위를 가린다. 이러한 경기가 많을수록, 달리기 속도를 측정하면 할수록 실력은 높아진다. 일반적인 제품에 소비자 평가를 하게 되면 제품의 품질이 경쟁으로 인해 나아진다. 즉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갖고 측정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 대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작용도 있다. 1980~1990년대, 미국의 대형 병원들이 처음으로 환자의 사망률을 공개하기로 합의를 했다. 이는 병원의 투명성을 높이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들은 한 번도 그들이 맡았던 환자들의 사망률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은 결국 환자를 치료하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환자 사망률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특정 병원의 실력을 나타내는 객관적이고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하지만 사망률을 공개하기로 한 시도는, 뜻하지 않게 병원이 수용하는 환자의 유형, 실험적인 치료의 시도, 그리고 진료의 수준과 같은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때문에 원래의 취지는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가장 먼저, 병원들은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상태가 위중한 중환자들을 가능한 받지 않으려고 했다. 즉, 모든 병원들이 사망률을 낮추는 데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중환자들은 이제 오갈 곳을 잃게되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더 많은 병원들이 점차 실험적인 임상치료나 난치병 진료를 중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새로운 시도를 중단하고 안정적인 진료만을 추구함으로써, 병원들은 점차 차별성이 없는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나아가고 말았다.
최근에 발표된 대학평가 보고서 역시 이와 비슷한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평가항목에 빠져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볼 때, 대학을 평가하려는 시도가 모든 대학을 차별성이 없는 비슷비슷한 모습들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평가 시스템의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평가 시스템이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을수록, 개척자들의 입지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즉, 무언가를 평가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 속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비슷비슷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물리학에서도 관찰하는 행위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관찰자 효과' observer effect 라는 유사한 개념이 있고, 이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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